정선의 집 앞에 택시 한 대가 와 닿은 것은 밤 새로 한시쯤이었다. 그 자동차 속에서 나온 것은 물을 것도 없이 정선과 갑진이었다. 그들은 오류장에서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고, 그리고 놀다가 막차도 놓쳐버리고 자동차를 불러 타고 경인가도를 올리 몰아 이때에야 집에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나고 걸음걸이조차 확실하지가 못했다. 갑진은 다시 자동차에 올랐으나 운전수가 보는 것도 꺼리지 아니하고 정선의 목을 껴안고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갑진은,
"재동으로 가!"
하고 운전수에게 명령을 하고는 쿠션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동차가 가는 대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미친 사람 모양으로 깔깔 웃었다. 운전수는 깜짝 놀라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예가 어딘가."
하고 갑진은 운전수에게 물었다.
"안동 네거리요."
하고 운전수는 귀찮은 듯이 대답하였다.
"안동 네거리라, 종로로 가."
하고 갑진은 바깥을 내다보았다.
"재동으로 가자 하셨지요."
하고 운전수는 차의 속력을 줄인다.
"하하하하. 이 좋은 날 집으로 가? 어디로 갈까. 어디 카페로 가자."
차는 섰다.
"어느 카페로 가세요"?
"아따 어느 카페로나 가? 어디나 우리 정선이 같은 미인 있는 데로. 어여쁘고, 살 부드럽고, 말 잘 듣는 계집애 있는 데로만 가!"
하고 갑진은 뽐내었다.
네거리 파출소 순사는,
"이놈 웬놈인가"?
하는 듯이 차를 흘겨보며 걸어나왔다. 운전수는 겁이 나서 차머리를 돌려 경복궁 앞을 향하고 달렸다.
"이건, 대관절 어디로 가는 거야"?
하고 갑진은 눈을 떴다.
"어디 가실 데를 말씀을 하셔야지요. 카페라고만 하시니 서울 장안에 카페가 몇인데 그러시오? 어디론지 가실 데를 말씀하셔요."
하는 동안에 차는 도청 앞을 나섰다.
갑진은 눈을 멀뚱멀뚱하며 몽롱한 머리로 생각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여러 카페의 여러 계집애들이 떠올랐다. 조선 계집애, 일본 계집애, 이애, 저애.
"아리랑으로 가자."
하고 갑진은 길게 트림을 하며,
"조선 계집애 ○은 보았으니까 인제는 일본 계집애로 ○가심을 해야지, 으어."
하고 또 트림을 한다.
운전수는 명령대로 차를 몰아 장충단으로 향하였다.
<아리랑>에는 손님이 거의 다 가고 술취한 사람 두엇, 카페 계집애에 미친 중늙은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갑진은 이층으로 비틀거리고 올라가며,
"오이, 아이꼬꾸웅."
하고 불렀다.
"마, 긴상."
하고 여자들은 갑진을 에워쌌다. 쾌활하고, 말 잘하고, 팁 잘 주고, 그리고 앗사리하다기로 이 카페의 웨이트레스간에 이름난 김갑진이었다.
"마아 한지산나노?(아 판사 영감이셔요?)"
하고 아이꼬상이라는 키 작고 토실토실한 계집애가 갑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갑진은 얼른 아이꼬상의 입을 맞추었다.
"이야! 손나 고도 이야!(싫어! 그런 것 싫어!)"
하고 아이꼬상은 수건으로 입을 씻고 뿌리치고 달아났다. 달아나서 갑진이가 앉을 테이블을 치웠다.
"오이, 위스키이이."
하고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