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아홉시나 되어서 갑진은 신마찌 이태리 계집의 집에서 나왔다. 정선에게서 어제 얻은 돈 오십 원 중에서 지전은 한 장도 아니 남고 은전과 백동전과 동전만이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서 절렁거렸다. 아리랑에서 셈을 얼마를 치르고 계집애들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이태리 계집애에게도 얼마를 주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머리만 아프고 목만 말랐다. 이태리 계집애 집에서 멀건 홍차 한 잔을 얻어먹고 밖에를 나서니 햇발이 천지에 찼으나 갑진의 마음은 좀 어두웠다.

 

갑진은 늦은 가을 아침 바람에 으스스한 것을 깨달으면서 누가 볼까 두려워 달음질로 샛골목으로 들어 장충단 전차 종점으로 갔다.

 

갑진은 서대문 노리까에를 받았다. 정선의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

 

갑진이가 정선의 집에 왔을 때에는 정선은 아직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아니하고 있었다. 한시에 갑진과 작별하고 집에 돌아온 정선은 곧 양심의 가책을 당하였다. 정선이가 갑진에게 안겨서 입맞춤을 당하고 나자 곧 대문이 열리고 어멈과 유월이가 뛰어나온 것을 생각하니, 자기가 갑진이와 하던 모든 모양을 다 보았으리라고 생각함에 그들의 낯을 대하는 것이 대단히 부끄러웠다. 만일 술기운이 없었다고 하면 그는 밤 동안에 괴로움으로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술김이다.

 

"그럼 어때, 그랬기로 어때"?

 

하고 정선은 스스로 제게 대해서 뽐내었다. 그래서 항의를 제출하는 양심의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또 만일 술김이 아니었더면 남의 아내인 정선이가 오류장에서 갑진에게 몸을 허하지도 아니하였을 것이다. 정선은 한 잔 두 잔 받아먹는 술이, 모든 도덕적 속박을 끊어주는 것이 재미있어서 더욱 한 잔 두 잔 받아먹었다. 그래서 술이 양심 옷을 다 벗겨버린 뒤에 정선은 남의 사내 앞에서 제 옷을 벗어버린 것이다.

 

정선이 잠이 깨매 술도 깨었다. 술과 잠이 한꺼번에 깬 정선은 열 두 방망이로 몰아치는 듯한 뉘우침의 아픔을 당하였다. 하필 이때에 아침 우편이 남편의 편지를 전하였다.

 

정선은 자리 속에서 유월의 손에서 허숭의 편지를 받았다. 겉봉에 쓰인,

 

"尹貞善氏"

 

라는 글씨를 보고 정선은 편지를 이불 위에 내어던지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었다. 그리고는 몸을 뒤쳐 베개에다가 낯을 대고 울었다. 정선은 혼자 몸부림을 하였다.

 

유월은 정선의 하는 양을 보고 정선의 옷을 요 밑에 묻어 놓고는 살그머니 나가버렸다.

 

마루 끝에 어멈이 가만히 와서 울음소리를 엿듣다가, 유월이가 나오는 문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고양이 걸음으로 물러서다가 유월이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부엌으로 간다.

 

유월이는 어멈을 따라갔다. 부엌에는 벌써 상이 다 보아 있고 찌개만이 화로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주인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얘, 왜 우시든"?

 

하고 어멈이 유월이의 어깨를 손으로 누르며 묻는다.

 

"모르겠어. 편지 겉봉을 보시더니 두 손으로 낯을 가리고 우시는걸."

 

하고 유월이는 부뚜막에 놓인 누룽지를 집어먹는다.

 

"응, 아마 시골서 편지가 온 게지."

 

하고 다 알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애그, 찌개가 다 조네."

 

하고 픽 웃는다. 그리고는 또 고양이 걸음으로 부엌문 밖에 나서서 안방으로 귀를 기울이고 엿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