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마아."
하고 옆에 앉은 계집애들이 놀래었다.
"얘, 위스키 병으로 가져와!"
하고 갑진은 좌우에 앉았던 계집애들의 어깨에 한 팔씩 걸치고 잘 돌아가지도 아니하는 가락으로,
"사께와 나미다까, 다메이끼까."
라는 일본 속요를 소리껏 불렀다. 다른 애들도 따라서 부른다. 계집애들은 제 어깨너머로 늘어진 갑진의 손을 잡고 갑진이가 몸을 흔드는 대로 함께 끌려 좌우로 흔들었다. 저쪽 병풍 너머서 낯이 동그스름한 십 칠팔 세나 되었을 듯한 계집애를 끼고 귀찮게도 조르고 있던 머리 벗어진 중늙은이 손님이 고개를 돌려 병풍 너머로 갑진이 편을 바라본다. 그는 낯이 넓적하고 눈이 떨어져 붙은 싱겁게 생긴 작자였다. 아마 큰 부자나 높은 지위는 없고 어찌어찌하다가 돈푼이나 모은 사람인 듯하였다.
"아, 영감님."
하고 갑진은 물론 일본말로,
"영감님 벗어진 머리에 털이 나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검어집소사고 축배를 듭니다. 자, 얘들아 너희들도 들려므나."
하고 위스키 잔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그 중늙은이는 면괴한 듯이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리고 그 벗어진 머리만이 원망스러운 듯이 이쪽을 향하였다.
"영감님, 여보 영감님!"
하고 갑진은 술을 흘리면서 불렀다.
"축배를 든다는데 왜 사람 본 자라 모양으로 목을 움츠러뜨리시오"?
"아스세요! 노여십니다."
하고 한 계집애가 갑진의 옆구리를 찌르며 귓속말을 한다.
"노엽기는."
하고 갑진은 술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누가 뭐랬길래 노해? 늙은이가 손녀 같은 계집애를 끼고 앉아서 무엇을 장시간 두고 졸라대는 것이 보기에 장히 거북하니까 좀 젊어지라는데 노해"?
하고 아주 엄숙한 어조다.
"어따, 그만두어라, 자 우리끼리나 축배를 들자."
하고 갑진은 또 잔을 쳐든다.
"무슨 축배"?
하고 한 계집애가 잔에 손을 대며,
"영감이 판사된 축배"?
하고 아양을 떤다.
"판사는…."
하고 갑진은 으으하고 땅을 내려다보며 트림을 한다.
"그럼, 무엇"?
"검사야 검사."
하고 갑진은 점점 더 취한 태를 보이며,
"검사가 되어서 너희 같은 계집애들을 모조리 잡아간단 말이야, 하하하하."
하고 귀여운 듯이 몽롱한 눈으로 계집애들을 둘러보다가,
"무섭지"?
하고 무서운 눈을 해 보인다.
"조금도 무서울 것 없지. 우리가 무슨 죄 있던가."
하고 한 계집애가 입을 비쭉한다.
"참, 그래."
하고 다른 애들이 대꾸를 한다.
"너희들이 죄가 없어"?
"어디 무슨 죄요"?
하고 한 애가 대든다.
"너희들의 죄를 들어보련"?
하고 갑진은 죽 술을 들이키고,
"없는 정도 있는 듯이 사내들을 후려내고, 우리네 같은 서생의 돈을 빨아먹고, 또 있지 또 있어. 어, 머리가 벗어진 늙은이 무릎에 앉아서 아양을 떨고, 어, 형법 이천 이백 이십 이 조에 의하여…."
머리 벗어진 중늙은이는 불쾌한 듯이 일어나서 갑진이 쪽을 한번 흘겨보고 나가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