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약간의 실망과 분노를 느끼면서 층층대를 오르려 할 적에,

 

"할로우!"

 

하고 어깨를 치는 사람을 만났다.

 

허숭은 짐을 놓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 사람은 이건영 박사였다.

 

허숭은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이건영을 만난 것을 불길하게 생각하였다. 그뿐더러 아내가 나와 맞지 않는 양을 건영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도 하였다.

 

"아, 이 박사. 편지는 고맙습니다."

 

하고 숭은 얼른 자기의 감정을 통일하여 가지고 당연히 할 인사를 하였다.

 

"아임 소리."

 

하고 건영은 숭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동생이나 후배를 위로하는 은근한 어조로, 참 유창한 영어로 귓속말로,

 

"당신의 가정에 관한 일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말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그러지는 일인 줄 잘 압니다. 그렇지마는 나는 허 변호사를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허 변호사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내 맘이 심히 괴로와서, 그래서 편지한 것입니다."

 

하고는 인제 와서 비밀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댁에는 올라오신다고 기별하셨어요"?

 

하고 묻는다. 숭은 건영의 입에서 담배내와 술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다 불길하게 생각됐다.

 

"전보를 했지요, 그런데 좀 늦어서."

 

하고 숭은 심히 거북한 것을 차마 거짓말을 못해서 바로 대답하였다.

 

"전보는 몇 시쯤"?

 

하고 건영은 일부러 숭에게 무슨 내막이 있다는 것을, 또 그 내막을 자기가 잘 안다는 것을 알리기려나 하는 것같이 물었다.

 

"다섯시나 되어서, 황주서 쳤지요."

 

하고 숭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오우, 아이 시이."

 

하고 건영은 서양식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그러면 그 전보 못 받으셨겠소. 정선씨가."

 

하고 건영은 남의 부인을 남편 앞에서 이름으로 부른 것을 후회하고,

 

"부인께서는 오늘 오후에 김갑진 군허구 베이스볼 구경을 가셨다가 아마 어디로 저녁을 자시러 갔을 것입니다. 요새 거진 날마다 그러시는 모양이니까, 지금 댁에 들어가시더라도 아마 부인은 안 계실걸요. 부인을 보시려거든 청목당이나 경성호텔이나…응 벌써 시간이 되었군, 난 갑니다. 굿바이. 부인 조심 잘 하시오!"

 

하고 단장을 흔들며 건너편 폼으로 가려는지 층층대로 뛰어오른다. 건영은 서분의 집에서 나와서, 정거장 식당에서 위스키를 한 잔 사서 날뛰는 양심을 어지려뜨려 놓고는, 인천으로 가는 길에 우선 경의선으로 혹시 아는 여자나 올라오면 만날까 하고 서성거리다가, 숭을 만나서 갑진과 정선에 대한 원혐을 풀고는 마음이 흡족하여 가는 것이었다.

 

건영이는 왜 인천에를 가는가. 그가 하는 행동에 하나라도 헛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인천을 가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인천에 개업하고 있는 어떤 여의를 찾으려 함이요, 또 하나는 만일 후일에 정서분으로부터 무슨 문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기가 이날 밤에 서울에 있지 아니하였다는 증명을 얻고자 함이었다. 정거장에서, 허숭과 같이 거짓말을 아니한다는 신용이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이건영 박사를 위하여 큰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