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보이를 보고 주정하고 있던 신사는 마치 이 세 사람 일행의 위풍에 눌린 듯이 소리도 없이 빠져 달아나고 말았다.

 

일행은 보이를 따라 복도를 굽이 돌아 어떤 구석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와 본 경험이 적은 숭은 호기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고붓고붓이 걸린 귀족들의 글씨,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취한 손님들과 하얀 얼굴, 눈만 반짝거리고 치마폭을 질질 끌고 가는 기생들, 그 기생들은 모두 강 변호사와 임 변호사를 아는 모양이어서 다 인사를 하고 버릇없는 말을 하고 스치고 가는 서슬에 꼬집고 꼬집히고, 안고 안기고 손 잡고, 그러고야 지나갔다. 그러나 숭을 아는 이도 없고 숭이가 아는 이도 없었다.

 

방들은 더러는 비었으나 더러는 불이 환하고 그 속으로서 장고, 가야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어떤 방에서는 아마 흥에 겨운 손님의 소리인 듯한 가락의 잘 꺾이지도 않는 소리도 들리고, 또 어떤 방에서는 싸움 싸우는 소리도 들리나 아마 농담인 듯하였다. 방이 여러 백개나 되는 것같이 숭에게는 보였다.

 

숭이 안내된 방은 제일 조용한 방인 듯하였다. 옷 벗어 거는 방까지도 방바닥이 양말을 통하여 뜨뜻함을 느꼈다.

 

두간 폭 세간 길이나 되는 방은 백촉광은 될 듯한 두 전등으로 비추어져 있고, 아랫목과 발치에는 길이 넘는 십이 폭 화병풍을 셋이나 연폭해서 두르고, 방바닥에는 자주 바탕에 남으로 솔기한 모본단 보료를 깔고, 박쥐 수놓은 사방침 안석을 벌여 놓고, 옷 벗어 놓는 방으로 향한 구석에는 야쓰데(일본말이니 잎사귀가 아주까리 같이 생긴 것)와 소철 분이 놓여 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는 하얀 상보를 덮은 장방형의 교자상이 놓여 있다.

 

"외투 벗으세요."

 

하고 현관에서부터 따라 들어온 기생들은 강 변호사와 임 변호사의 인버네스라고 하는 외투를 벗긴다. 숭은 제손으로 외투를 벗어 걸었다.

 

보이는 차를 가져왔다. 차맛이 숭했다.

 

숭은 이렇게 화려하게 차린 집에 어떻게 이렇게 차맛이 숭할까 하였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병풍의 그림이나 사벽에 걸린 그림이나 다 변변치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집의 허물이 아닐는지 모른다. 우리 조선의 정도가 이만밖에 못한 것일는지 모른다 하고 숭은 또 한 선생의 말을 생각하였다-

 

"이슬 한 방울에 온 우주의 모든 법칙이 품어 있는 것과 같이, 마루청 널 한 쪽에도 조선 문화 전체가 품어 있다"

 

하는 것이었다.

 

마루청 널 한 쪽만 있어도 당시 조선의 공업, 미술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더러, 만일 거기 묻은 때를 분석한다 하면 그 이상 더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일본 노래가 들려온다.

 

요새에는 일본 사람도 조선 요리집에를 많이 오고 조선 사람들도 일본 요리집에를 더러 간다고 한다.

 

일본 사람이 이 방에를 와 본다면 이 방에 걸린 그림, 이 방에 놓인 가구로 조선의 문화를 판단할 것이라고 숭은 생각하였다.

 

"얘, 그 배부를 것은 가져오지 말고, 응, 그 배는 아니 부르고 맛만 있는 안주를 좀 가져오너라."

 

하는 것이 강 변호사가 보이에게 대한 명령이었다.

 

"배 안 부른 음식이 어디 있단 말요? 배가 부르지."

 

하고는 한 기생이 빈정댄다.

 

"요녀석, 네가 무얼 안다고."

 

하고 강 변호사는 어린애를 위협하는 모양으로 눈을 흘긴다.

 

"음식이란 요리를 잘한 것일수록 목구멍만 넘어가면 남는 것이 없어야 되는 것이어든."

 

하고 임 변호사가 아는 체를 한다.

 

"암 그렇지. 미인도 마찬가지거든."

 

하고 강 변호사가 웃으며,

 

"원체 미인이란 곁에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아니하고, 무릎에 앉혀도 있는 것 같지 아니하고, 품에 넣어도 있는 것 같지 아니하고, 그래야 되는 것이어든."

 

"그럼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겠구려."

 

하고 한 기생이 톡 쏜다.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기생들은 세 사람의 앞에 놓인 조그마한 일본 술잔에다 일본 술을 따른다.

 

강 변호사는 술잔을 들고,

 

"자, 허군."

 

하고 숭을 바라본다.

 

숭은 학교에서 강 변호사의 강의를 들은 일도 있으므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 세 사람은 한 모금씩 먹고 잔을 놓았다.

 

"얘들아, 너 이 양반 누구신지 아니"?

 

하고 강 변호사는 허숭을 가리켜 보이며 기생들에게 물어 본다.

 

"몰라요."

 

"언제 뵈었던가요"?

 

하고 두 기생은 몰라보는 것이 미안한 듯이 숭을 바라보고 있다.

 

"예끼년들, 이 양반을 몰라"?

 

"첨 뵙는 걸 어떻게 알아요"?

 

"글쎄나 말이지."

 

"너 어디 알아맞혀 보아라."

 

"글쎄."

 

"글쎄, 선생님, 학교 선생님"?

 

하고 세 사람의 눈치를 엿보더니,

 

"아이고 난 몰라요."

 

하고 몸을 흔든다.

 

"너 허 변호사 영감 말씀 못 들었니? 이년들 도무지 무식하구나."

 

하고 임 변호사가 말을 낸다.

 

"오, 저, 윤 참판…."

 

하는 것을 한 기생이 눈짓을 하니까 쑥 들어간다. 어쨌으나 두 기생은 숭이가 윤 참판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누구인지를 알았다.

 

"잡지에랑 사진 난 것 뵈었어요. 부인께서 참 미인이셔."

 

하고 나이 먹은 기생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