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변호사와 임 변호사가 권하는 대로 숭은 술을 받아 먹었다.

 

위스키가 둘째 병이 거진 다 없어졌다.

 

손님들도 취하고 기생들도 취하였다.

 

사람들이 취하니 전기등도 취하고 술잔도 술병도 취한 듯하였다.

 

숭이 보기에 조선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 세계만 아니라 전 우주가 모두 취해버린 것 같았다.

 

"壺裏乾坤(호리건곤, 술병 속 세상)"

 

이라는 문자의 뜻을 숭도 깨달았다.

 

"아뿔싸 내가 이렇게 술이 취해 될 수가 있나"

 

하고 숭은 가끔 반성하였다. 그러나 반성하려면 양심의 세포는 위스키의 독한 마취성으로 끊임없이 마취함을 당하였다.

 

숭의 어릿한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내왕하였다.

 

아내 생각, 처가집 생각, 농촌사업 생각, 한 선생 생각, 산월이 생각 등등. 취중에 나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고 모두 꿈 같고,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우스운 빛을 띠었다. 다 희극적이었다.

 

정선이와 갑진과 어디서 어떠한 희롱을 하는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다 우스웠다.

 

"네버 마인!"

 

하고 숭은 밑도 끝도 없는 말 한 마디를 던졌다.

 

"네버 마인"?

 

하고 산월이가 이상한 듯이 숭을 바라본다.

 

산월의 눈은 모든 것을 다 내어던지고 애원하는 듯한 눈이었다. 그의 속에도 거푸 들어간 위스키 몇 잔이 큰 변화를 일으켜서 처음 가지고 있던 점잖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성에게 아양 떠는 여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우 예스. 네버 마인!"

 

하고 숭은 한번 더 눈 앞에 아내와 갑진과의 음탕한 희롱의 장면을 그리고는 산월의 허리를 끊어져라 하고 껴안아 당기었다.

 

산월은 마치 첫사랑에 어린 처녀 모양으로 숭을 껴안고 발발 떨었다.

 

강 변호사는 임 변호사를 붙들고 무슨 고담준론을 하고 있고, 임 변호사는 어린 기생을 무릎 위에 끌어 올리려고 강 변호사의 말도 들은 체 만 체다.

 

"아임 해피."

 

하고 산월이가 숭의 가슴에 낯을 비비고 조끼 겨드랑이에 매달리면서 심히 흥분된, 그러나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행복은 순간적이야."

 

하고 우는 모양으로 숭의 허벅다리에 낯을 비빈다.

 

"열정적인 여자다"

 

하고 숭은 물끄러미 산월의 목덜미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선도 열정적이다.

 

자기가 정선에게 대한 것이 너무 점잖은 것이 아니었던가.

 

모든 여자는 다 열정적인 것이 아닌가 하였다.

 

"오, 잘들 하는구나."

 

하고 딴 방에 개평 떼러 갔던 나이 많은 기생이 들어와서 산월의 볼기짝을 쥐어박는다.

 

"아이 언니두."

 

하고 산월은 벌떡 일어나서 눈을 흘겼다. 인제는 산월도 처음에 가졌던 자존심을 다 집어치우고 다른 기생들과 똑같이 언니 동생하고 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