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이 뛰어나간 것은 불현듯 정선을 생각한 까닭이었다. 술에 취하고 곁에 다른 여자가 아른거리더라도 정선이란 생각이 무시로 쿡쿡 가슴을 쑤셨다.

 

"도무지 이게 무슨 꼴이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그럼 어때"?

 

하는 식으로 잊어버리려 하였다.

 

"어딜 가세요"?

 

하고 복도에서 산월이가 숭을 따라 잡았다. 숭은 팔에 매어달리는 산월의 가련한 눈을 돌아보았다.

 

"난 집으로 가."

 

하고 숭은 산월의 손을 찾아 작별의 악수를 하였다.

 

안 먹던 술을 많이 먹은 숭은 아주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은 아니었지마는 가끔 아뜩아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슴은 뛰고 머리는 아프고 눈은 감겨졌다. 게다가 마치 뱃멀미가 난 것처럼 속이 느글느글해서 금시에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좀더 놀다 가세요, 네. 내 바래다 드리께, 네."

 

하고 산월은 숭에게 매달려 가면서 붙들었다. 숭은 여자의 술 취한 얼굴을 처음 보았다. 빨갛게 된 뺨과 눈자위, 커다랗게 확대된 눈동자, 흘러내린 매무시, 이런 것을 숭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러한 젊은 여자가 팔에 와서 매달리는 양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정경은 숭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숭은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하여도 다리가 이리 놓이고 저리 놓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숭은 한 팔에 외투를 걸치고, 한 팔에 산월을 끼고, 모자를 비우뚱하게 쓰고 복도에서 비틀거리는 양은 부랑자와 다름이 없었다. 숭은 자기의 꼴이 어떠한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 반성할 정신은 있지마는 몸으로 평형을 보전할 기운은 없었다.

 

"이렇게 비틀거리고 어디를 가시우"?

 

하고 산월은 현관이 가까와질수록 걱정을 하였다.

 

"더 먹으면 더 비틀거리지."

 

하고 숭은 혀가 마음대로 아니 돌아가는 것에 성화가 났다. 거의 현관에 다 나온 때에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방에 있던 기생이 둘이 나와서,

 

"들어 오세요! 어딜 몰래 두 분이 달아나세요"?

 

하고 하나는 숭의 외투를 빼앗고, 또 하나는 숭의 모자를 빼앗아 가지고 들어가버린다.

 

"자 인제 들어가세요! 강 변호사랑, 임 변호사랑 섭섭해하시지 않아요"?

 

하고 산월도 발을 벋디디고 숭을 잡아 끈다.

 

"그래라, 내 어디 집 있드냐."

 

하고 숭은 발을 돌려서 산월보다 앞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남편인 자기를 기다리고 있지 아니함을 생각하면 산월이가 붙들어 주는 것이 도리어 정답고 고맙기도 하였다. 그야 산월은 날마다 딴 사내를, 하루에도 몇 사내를 이 모양으로 정답게 붙잡기는 하겠지마는 그러면 어떠냐. 누구는 안 그렇던가.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활발하게 비틀거리며 방에 들어가,

 

"선생님, 두 분 선생님, 제가 취했습니다. 취했는데, 이렇게 취하게 한 책임이 어디 있느냐 하면 두 분 선생님께 있단 말씀입니다. 어으."

 

하고 트림을 한다.

 

"허군, 이 봐 허군."

 

하고 강 변호사가,

 

"허군, 허군 술 취하게 한 책임은 다른 누구, 나 말고 다른 누구에게 있는 듯한데."

 

하고 웃는다.

 

"다른 누구"란 말이 숭의 귀에는 "네 아내"라는 뜻같이 들려서 불쾌했다. 그것을 감추느라고,

 

"네, 이 산월이 때문입니다. 산월이 안 그렇소"?

 

"네, 네, 그렇습니다."

 

하고 산월이가 숭의 잔에 술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