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이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가엾게 코를 골고 잠이 들었던 그 여자도 눈을 떴다. 그 눈은 처음에는 반가운 웃음으로 가늘게 빛났으나, 숭의 얼빠진 모양을 보고는 놀람으로 크게 둥글게 떴다. 그리고 그 여자도 벌떡 일어났다.
"난 여태껏 앉았다가 금시 잠이 들었어."
하고 제가 제게 잠든 것을 변명한다.
숭은 그 소리의 임자가 산월인 것과 자기가 허숭인 것을 비로소 인식하고 어젯밤 강 변호사와 술 먹던 생각이 대강대강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술 안 먹던 이가 술취한 때에 흔히 그러한 모양으로 술이 어떤 정도까지 취한 뒤의 일은 도무지 기억에 떠오르지를 아니하였다. 다만 한 십년 전 한 만리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던 것 같다는 것만이, 마치 글자를 지워버린 칠판에 글자는 없으나 쓰였던 자국이 남은 것과 같았다. 무엇인지 모르나 결코 좋은 일은 아닌 성싶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아나…입맛이 쓰고, 머리가 띵하고, 마음이 찜찜한 것으로.
산월은 친절하게 준비하였던 밀수(蜜水)를 숭에게 권하였다.
"댁으로는 아니 가신다고 그러시고,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시길래 할수없이 우리집으로 뫼셔 왔죠."
하고 산월은 전기난로의 스위치를 틀고 이불을 들어 숭의 앉은 몸을 둘러 싸 주고 자기는 손을 요 밑에 넣고 앉으며,
"취중이나 아니시면 선생님이 우리 집에를 오실 리가 있겠어요? 창기의 집에를. 선생 같으신 좋은 뜻 가지신 이가 우리 집에 오셔서 몇 시간이라도 계셨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일생에 다시 있지 못할 귀한 사건으로 기억되겠지요. 그러니까 과히 불쾌하게 생각마세요."
하고 숭의 눈치를 엿보며 머리를 만진다.
숭이 말없이 점잖게 앉았는 것을 보고 산월은,
"인제 다 밝았으니 세수나 하시고, 아침이나 잡수시고 가실 데로 가세요, 그렇게 무서운 얼굴 마시고. 제 집에서 나가실 때까지는 취한 대로 계세요. 깨셨더라도 깨체 마세요. 사내 양반들은 술 취한 때에만 참 저로 보이드군요. 선생님도 어젯밤에는 참 당신을 보이셨지요. 꾸미지 아니한 적나라한…그래서 나는 술 취한 사람들 보는 맛에 이 기생 노릇을 하고 살아간답니다. 도무지 그 술 안하고 도덕적인 젠틀맨들한테는 멀미가 났거든요. 네 그 거짓! 그 거짓! 오우 아보미네이션(Abomination=성경에 나오는 말이니 가증함이라는 뜻)."
하고 목전에 가증한 것을 보는 것같이 몸을 떨었다.
산월의 말에는 열이 있었다. 크게 가증한 꼴을 당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렇게 남자의 거짓에 대해서 깊이 불쾌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열이 숭의 말을 끌었다.
"왜 그렇게 남자를 저주하고 술 주정꾼을 찬미하시오"?
하고 숭도 마음이 좀 풀렸다. 아직도 술이 다 깨지는 아니하였다.
"왜 남자를 저주하느냐고요? 아니오, 나는 남자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왜 저주해요? 남자가 없으면 여자들이 심심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요? 남자가 밥 벌어준다든지, 여러 가지 힘드는 일을 하여 준다든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것은 소와 말을 부리고 또 기계를 이용해서라도 보충할 수는 있지마는 장난감으로 본 남자는 무엇으로도 리플레이스(대신)할 수가 없단 말야요,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하고 찬미하지요. 저주할 리가 있어요. 절대로 아니지요. 사랑하고 찬미하길래 나 같은 년도 사내한테 반해서 허덕이다가 속고, 발길로 채어서 떨어졌지요-아냐요, 아냐요, 하하하하, 고만, 속에도 없는 소리를 해버렸네."
하고 산월은 분명히 술이 ?6.59깨 것 같건마는 취한 체를 한다.
숭은 산월의 말과 태도에 얼마쯤 끌려들어서 굳어졌던 마음이 약간 느긋느긋하게 됨을 깨달을 뿐더러 도리어 일종의 유쾌함까지도 깨닫게 되었다.
"내 말이 무례한 말이어든 용서하시오."
하고 숭은,
"어찌해서 기생이 되셨나요"?
하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