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쑥스러운 문제는 집어치우구…."

 

하고 산월은 좀더 취한 태를 보이며,

 

"점잖다는 사내들한테 멀미가 났으니깐, 예배당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신사들한테 멀미가 났으니깐 부랑자, 술주정뱅이를 따라서 기생으로 나왔죠. 부랑자에게는 사랑과 용기와 의기가 있고, 주정뱅이는 거짓이 없어요, 가작이 없구요. 참과 사랑과 용기와 의기-이것은 조선서는 부랑자와 주정꾼에게서밖에는 얻어볼 수 없는 것 같더군요.

 

저 여러 가지 체를 쓴 신사들은 ○○과에 잡아다 놓고 잔뜩 취하게만 해 보오, 비로소 참 사람들이 될 것이니. 그야 그 작자들이 그 가식을 떼어버리면 그 회칠한 무덤 껍질을 벗겨버리면 구려서 못 견디겠죠, 하하하하. 어디 껍질을 벗겨서 향내 날 사람이 몇 되던가, 하하하하, 선생님 안 그렇소? 왜 나오시다가 그 ○○○○ 선생님 축들 노는 방문을 열어젖히셨지, 생각나세요?

 

그 사람들이 ○○ 중에서는 제일 그래도 사람다운 사람들이요, 그래도 술을 먹어도 요리집에 와서 먹거든. 안 그래요, 선생님. 아이 그렇게 점잔빼지 말구, 술 깨지 말아요, 내가 무어랬어요! 그렇게 가작 마시고 속에 있는 대로만 하세요. 내 말이 듣기 싫으면 싫다고, 내가 귀여우면 귀여운 모양을 하세요, 어젯밤 취하였을 때 모양으로, 아이!"

 

하고 산월은 어리광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그 몸부림은 비통한 눈물에 젖은 것 같았다.

 

"난 가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본성이 이렇지. 난 지금 산월씨 하는 말을 정신차려 듣고 있는데요."

 

하고 숭이 한마디 하였다.

 

"그러신 줄 알아요. 선생님은 정선이 집-아니 참 처가댁에 계실 때부터 우리들 중에 문제가 되었더랍니다. 재주 있고 정직한 시골 고란이로 하하하하, 정말야요. 정선이도, 아이 용서하세요, 나 같은 년이 부인의 이름을 불러서, 그러니 무에라고 불러요? 아따 우리 취한 것으로 작정했으니까 상관없지요. 정선이도 부인께서도 선생님을 <우리 고란이>라고 했답니다, 정말야요. 그때에는 나는 분개했지요. 나도 선생님을 퍽으나, 아이구 무에라구 할까, 존경이라고 할까, 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소원 성취했어, 내가 좋아하는 양반을 이렇게 잠시라도 내 집에 뫼셔다 놓았으니깐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러기로 주정꾼 만나기 위해서 기생된다는 데가 어디 있어요"?

 

하고 숭은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의무를 느끼면서,

 

"그것은 첫째로 저를 학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커뮤니티(제가 소속한 단체-민족이나 국가나 기타 작은 사회라도)에 대한 빚과 구실을 잊어버린 것이란 말이지요. 어떠한 불평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핑계가 있더라도 당신과 같이 재주와 교육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가 기생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지요. 기생이란 사회에 무슨 유익을 준단 말요? 왜 간호부가 안되시오? 왜 유치원 보모가 안되시오? 왜 농촌 야학에 선생이 안 되시오?

 

당신만한 재주와 교육을 받은 이가 어디를 가기로 굶어 죽는단 말요? 간호부, 보모, 교사, 다 어떻게 사회의 봉사하는 직업이오? 그런데 기생이라면 부랑자와 술 주정꾼, 사회에 아무 소용없는 계급의 장난감밖에 더 되는 것이 무엇이오? 그도 원체 재산도 없고, 교육도 없고, 밑천이라고 몸 하나밖에 없는 여자면, 혹 부모한테 팔려서, 혹 부모를 벌어 먹이느라고 기생이 되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당신 같은 이는 무슨 이유가 있단 말요"?

 

하고 열심으로 공박을 하였다.

 

산월은 가만히 듣고 앉았더니,

 

"그렇지요. 기생이 맡은 파아트라는 것이야 사회에 이로울 것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선생님, 세상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랍니다. 누가 기생 되고 싶어 된 사람 어디 있나요. 황 진이 말도 있지마는 나는, 다 믿지 아니합니다. 그렇지마는 서울 사오백 명 기생에게 물어보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답니다. 기생이 아니 되면 아니 될 사정이 있답니다. 누가 되고 싶어 된 것이었던가요?

 

마르크시스트의 말을 빌면 제도의 죄라고도 하겠지요. 운명론자의 말을 빌면 막비천명이라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일원적으로 깨끗하게 설명되는 것만도 아닌가 합니다. 어떤 기생은 어미 애비를 잘못 얻어만난 탓도 있겠지요. 어떤 기생은 부모에게 대한 효성이라는 동기도 있겠지요. 또 어떤 기생은 에라, 빌어먹을 것 하고 의식적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술과 사내 속에서 아무렇게나 놀다 죽자 해서 된 이도 있겠지요.

 

또 나 모양으로 신사들에게서 멀미가 나서 부랑자와 주정꾼의 참된 의기, 담대한 사람 같은 것을 바라고 기생이 된 년도 있겠죠. 하하하하. 그러니까 인생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선생님이 좋은 지위, 좋은 재산, 어여쁜 부인 다 내버리고 시골 구석에 가서 농촌사업을 하시는 것도 우리네가 기생된 것과 같아서 단순하게 마르크시즘이나, 운명론이나, 이상론만 가지고도 설명이 안될 것입니다.

 

그러니깐, 나는 아무도 원망을 아니합니다. 이건영에게 짓밟혔다고 원망을 아니합니다. 아이그머니, 또 내가 속에도 없는 소리를 했네. 아뿔사, 내가 이렇게 사설을 하다가는 선생님께 속 다 뒤집어 보이겠네. 아이 그런 소리는 다 해 무엇해요. 아무려나, 난 이건영이를 한번 술을 먹여서 그 가식을 다 벗겨 놓고 싶어요. 어떻게 하나 좀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