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는 주인 없는 집에 하인들만 안방에 모여 앉아서 지껄이고 있었다. 이 때에는 정선은 봉천 가는 차로 떠난 뒤였었다.
"에그머니, 영감마님 목소리야!"
하고 유월이가 눈이 똥그래졌다.
"에라, 얘 미친년 소리 말아. 영감마님이 어디를 온단 말이냐. 잿골 서방님이 오시면 오시지."
하고 어멈이 유월의 오금을 박는다. 그는 영감마님에는 경어를 아니 쓰고, 잿골 서방님에는 경어를 썼다.
이 때에 또,
"문 열어라."
하고 소리가 첫번보다는 좀 크게 들렸다.
"자, 아냐"?
하고 유월은 이긴 자랑으로 어멈을 한번 흘겨 보고,
"네에."
하고 일어나 뛰어나간다.
유월이가 나간 뒤에 어멈, 침모, 차집의 무리는 황겁하여 모두 주섬주섬 거두어 가지고 방바닥을 쓸고 뛰어나간다.
"삐걱"
하고 문이 열리며 유월의 얼굴이 쏙 나왔다.
"에그머니, 영감마님 오셨네."
하고 유월은 너무나 반가와서 숭에게 매어달릴 듯하였다. 그러다가 신분이 다른 것을 깨닫고 중지하는 것 같았다.
이 집에서 진실로 숭을 그리워하는 것은 유월이뿐이었다. 온 집안 식구가 다 숭을 업신여기니까 그 반감으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유월은 진정으로 숭을 그리워하였었다.
숭은 유월의 머리를 만지며,
"잘 있었니"?
하고 문지방 안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
"마님은 시골 가셨는데, 아까 차로."
하고 유월이가 곁에 붙어 들어오면서 걱정하였다.
"시골 갔어"?
하고 숭은 아내가 시골 갔다는 유월의 말에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영감마님 계신 시골 가셨어요."
하고 유월은 정당한 말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듯이 몸을 ?6.59꼬다.
방에 들어오니 그래도 낯익은 곳이었다. 비록 길지는 아니하나 새로운 젊은 부부의 기억을 담은 방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 책상, 의장, 모두 예나 다름이 없었다. 벽 옷걸이에 걸린 정선의 입던 치마, 두루마기도 예와 같은 모양이었다. 하나 다른 것은 방안에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재떨이에는 반씩 남은 궐련 끝이 여러 개가 있었다. 정선이가 담배를 먹는가, 정선을 찾아온 남자 또는 남자들이 먹은 것인가, 잠깐 그것이 숭을 불쾌하게 하였다.
"시골 가셨어"?
하고 숭은 외투도 아니 벗은 채 아랫목에 다리를 뻗고 앉으며 대문간에서 유월에게 금시 들은 말이 미덥지 아니한 듯이 재차 물었다.
"네에."
"아까 차에"?
"네에."
"어느 시골"?
아무리 생각해도 정선이가 저 있는 곳에 갈 것 같지는 숭에게는 생각되지 아니하였다. 만일 진실로 정선이가 남편을 따라서 살여울로 갔다고 하면 숭이 지금까지 아내에게 대해서 가졌던 생각을 다 교정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영감마님 계신 시골이죠."
하고 유월은 제가 무슨 잘못된 말이나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방 치던 손을 쉬고 물끄러미 숭을 쳐다본다.
숭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젯밤에는 몇 시에 돌아오셨든"?
하고 얼마 있다가 숭은 눈을 떠서 유월을 보며 물었다.
"네"?
하고 유월은 어찌 대답할 바를 몰랐다.
"자정에도 아니 돌아오셨다고 했지"?
하고 숭은 증인을 심문하는 법관모양으로 차게, 사정없이 물었다.
"자정에요"?
하고 유월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을 본 사람같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그리고 어젯밤 자정에 받은 난데없는 전화, "글쎄, 음성이 이상하게 귀에 익더라니" 하였던 그 전화가 그러면 주인의 전화였던가. 그러면 주인은 마님이란 이가 잿골 서방님이란 사내하고 밤중까지 바람이 나서 돌아다니던 일을 다 알고 있는 모양인가 하고, 유월은 숭의 눈이 무서운 것 같았다. 저도 숭에게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몇 신지 모르겠어요."
하고 유월은 대답하였다. 한시 반이나 되어서 돌아왔단 말은 차마 나오지 아니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