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잔이 돌아오는 대로 술을 받아 먹었다. 하늘에 별들이 모두 궤도를 잃어버려서 어지러이 돌고, 인생이 모두 악마와 같은 빛과 소리를 가지고 함부로 날뛰었다. 도덕, 이상, 분투, 의무, 인격, 의, 위신, 이런 것들은 모두 알콜에는 녹아버리는 소금붙이였다.
얼마나 떠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떠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새벽 세시는 되어서 숭은 비틀거리며 그 방에서 나왔다. 산월은 여전히 숭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숭은 뒷간에를 가는 심인지, 여관을 가는 심인지 비틀거리고 걸어 나오다가 문 밖에 슬리퍼가 많이 놓인 방 앞에 우뚝 서며,
"어 이거, 웬 사람들이 밤이 새도록 술을 먹고 야단들야. 이러고 나라가 아니 망할 수가 있나."
하고 산월이가 애를 써서 붙잡아 끄는 것도 뿌리치고 쌍창을 드르륵 열었다.
그 안에는 칠팔 인의 술 취한 얼굴들이 얼빠진 듯이 이 난데없는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그 얼빠진 얼굴들 틈에는 거의 동수나 되는 기생들이 끼어 앉아 있었다.
"여보, 누구신지 모르겠소마는 아무것도 없는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것들이 다 무슨 짓이란 말요? 다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좋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먹어 밤을 새다니, 어 그게 무슨 짓이란 말요"?
하고 숭은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일장 연설을 하였다.
"이 어른 취하셨습니다."
하고 산월이가 허숭을 위해서 여러 사람에게 사죄를 하였다.
"이놈아."
하고 좌중에서 어떤 사람 하나가,
"그런 소리를 하겠거든 제나 정신이 말짱해 가지고 해야지, 글쎄, 백제 저부텀 눈깔에서 무주가 나오는 놈이 무에라고 지껄여, 이놈아."
하고 일어나 대들려고 한다.
숭은 주먹으로 대드는 데는 취중이라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취중에라도 놀라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 자리에, 이런 술과 계집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숭은 본 것이었다.
1. ○○학교 선생
2. ○○학교 선생
3. ○○신문사에 있는 사람
4. ○○신문사에 있는 사람
모두 선생이라 부르는 점잖은 사람들이다. 숭은 취중에도 놀랐다. 술이 갑자기 깨는 것 같았다. 숭은 뽐내던 호기도 다 없어지고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모양으로 문지방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때에 강 변호사, 임 변호사도 왁자지껄하는 소리를 듣고 따라 나오다가,
"허군, 허군."
하고 숭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 선생이시오"?
"오, 누구라고."
이 모양으로 방에 있던 패들은 대개 강 변호사나 임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이어서 긴장하던 시국은 전환이 되고 말았다.
"허군이야, 허숭 변호사."
하고 강 변호사는 좌중에 숭을 소개하였다.
다시 술자리가 벌어질 모양이다.
숭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여 인사를 하고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나왔다.
보이와 산월은 쓰러지려는 숭을 부축하여 자동차에 태우고 산월도 같이 올라 앉았다. 자동차에 오른 숭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숭이 눈을 떴을 때에 숭의 눈에 뜨인 것은 눈에 익지 아니한 방 모양이다. 찬란한 화류 장농, 양복장, 책장, 문갑, 책상, 교의 등 도무지 꿈도 꾸지 못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곁에 누운 사람이 있다. 두어자쯤 새를 떼어서 자리를 깔고 누운 젊은 여자가 있다. 숭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어디 와 있어"?
하고 숭은 눈을 크게 떴다.
목이 마르다.
입이 쓰다.
머리가 띵하다.
눈은 텁텁하다.
속은 쓰리다. 그리하고,
마음은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