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따라라."

 

하고 강 변호사는,

 

"어디 이거 도무지 실차지 아니해서 먹겠니? 원청강 영웅에겐 요런 조그마한 술잔이 맞지 아니하거든. 술을 동이로 마시고 돼지다리를 검으로 떼어 먹어야 쓰는 것이어든. 요게 다 무에냐, 좀스럽게."

 

하고 잔을 내어던진다.

 

"고뿌 가져오래요"?

 

하고 한 기생이 묻는 것을, 강은,

 

"그래, 고뿌하구 위스키 가져오래라. 한잔 사내답게 먹고 때 못 만난 영웅의 만객수를 잊자. 안 그런가. 남들은 국제연맹이니 군비축소니 무에니 무에니 하고 떠들지마는, 우리네야 술이나 먹지 무어 할 일 있나. 남아가 한번, 제길 아깝구나. 이년들 너희년들이야 ○이나 알지 무얼 안다고 웃어. 하하하하. 아니꼬운 년들 같으니."

 

하는 강은 점점 더 취해가는 모양이다.

 

위스키가 왔다. 흰 말을 그린 위스키 한 병에 대달린 유리잔이 세 개.

 

"뽕뽕뽕뽕."

 

하는 소리를 내고 기생의 손에 들린 가무스름한 병에서는 노르스름한 술이 나와서 수정과 같은 잔에 찬다.

 

"됐다. 자 허군."

 

하고 강 변호사는 또 아까 모양으로 술잔을 들어서 숭에게 권한다.

 

"그렇게 못 먹습니다."

 

하고 숭은 사양하였다.

 

"무얼 그래. 자 자시우. 남아란 안 먹을 때엔 안 먹고 먹을 때에는 또 먹는 것이어든. 그렇게 교주고슬을 해서는 못 쓰는 게여."

 

"어서 드시우. 사내가 술 한 잔은 해야지."

 

하고 임 변호사도 곁에서 말한다.

 

"잡수세요!"

 

하고 어린 기생이 정답게 술을 들어 권한다.

 

"부인께서 무서우셔서 못 잡수셔요"?

 

하고 또 한 기생이 놀린다.

 

몇 잔 먹은 일본 술만 해도 벌써 낯이 화끈거리는 판이다. 더 먹어서 될 수 있나, 하고 한편으로 꺼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미 먹은 술과 가슴에 북받치는 홧덩어리가 에라 좀 먹고 취하여라 하고 술을 부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숭은 강 변호사가 권하는 대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강 변호사는 기생들 두 년이 다 허 변호사의 눈에 들지 아니하고, 허 변호사에게 술을 권할 능력이 없다고 하여 다른 썩 얌전한 놈을 하나 부르라고 호령호령을 하였다.

 

숭의 뱃속에 들어간 위스키는 신비한 힘을 내었다. 차차 맘이 유쾌해지고 말하기가 힘이 들지 아니하였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고 공간의 제한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강 변호사 임 변호사에게 술을 권하기도 하고 기생에게까지 술을 권하였다.

 

새로 온 기생은 산월이라고 불렀다. 그는 분홍 저고리에 흰 치마를 입었다. 그것이 그 기생을 퍽 점잖게 보이게 하였다.

 

산월은 문지방을 넘어서며 한 손으로 방을 짚고 쭈그려 인사하고 약간 고개를 숙이는 듯하였다. 그의 눈은 빛났다.

 

숭은 놀랐다.

 

그것은 산월이라는 그 기생이 어디서 본 사람 같기 때문이다.

 

산월도 숭을 보고는 우뚝 섰다. 그리고 그 눈이 더욱 빛이 났다.

 

그러나 아는 체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아니한지를 의심하는 듯이 다른 손님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 산월이, 너 요새 서방질 잘 하니"?

 

하고 강 변호사가 산월의 손을 잡아서 숭의 곁에 앉히며,

 

"너 오늘 저녁에는 이 손님께 술을 권하란 말이다. 어디 명기 될 만한 자격이 있나 보자. 이 두 년들은 다 낙제다, 하하하하."

 

하고 말한다.

 

그제야 산월은 자기가 섬겨야 할 손님이 허숭인 줄을 알고, 허숭의 잔에 술을 따르려고 병을 들고 허숭이가 잔을 들기를 기다린다.

 

"양주는 그냥 따라 놓는 법야."

 

하고 임 변호사가 또 아는 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