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마당에서,

 

"김군, 갑진이."

 

하고 찾는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은 장승모양으로 우뚝 섰다.

 

그것은 숭의 음성이었다.

 

"얼른 저 반침 속으로 들어가!"

 

하고 갑진은 정선을 반침 있는 쪽으로 떠밀었다. 정선도 얼김에 갑진이가 시키는 대로 반침 속으로 들어갔다.

 

갑진은 정선을 반침 속에 감추고 나서 쌍창을 열었다. 거기에 과연 숭이 엄숙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손님 안 계신가"?

 

하고 숭은 마루 앞에 놓인 부인네 구두를 보고 물었다. 제 아내 구두를 모를 리가 없지마는 아내가 설마 여기 와 있으리라고는 숭은 꿈에도 생각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것을 아내의 구두로는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갑진이가 또 어떤 여자를 후려다 놓았는가 할 뿐이었다.

 

"아니, 손님 없어. 들어와, 언제 왔나"?

 

하고 갑진은 허둥지둥 인사를 하다가 마루 앞 보석 위에 놓인 정선의 구두를 보고는 제아무리 갑진이라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갑진은,

 

"머리 감추고 꼬리 못 감춘다"는 말을 생각하고 픽 웃었다.

 

방에 들어와 마주앉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바라만 보고 말이 없었다. 서로 저 편의 속을 탐지해 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피차에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 것이었다.

 

"내가 자네하고 오래 말하고 싶지 아니하이. 다만 한마디 자네 말을 듣고 가려고 온 것일세. 허니까, 분명한 대답을 해주게."

 

하고 숭이가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옳은 말일세."

 

하고 갑진이가 뻔뻔스럽게 대답한다.

 

""?

 

"나도 자네하구 길게 말하기를 도무지 원치 아니하네. 나도 자네한테 꼭 한 마디 물어볼 말이 있으니 분명한 대답을 주게."

 

하고 갑진은 마치 숭의 흉내를 내는 듯하였다.

 

숭은 갑진의 뻔뻔스러움이 심히 불쾌하였으나 못 들은 체하고,

 

"첫째는 일전 편지로도 말했지마는 이로부터는 다시는 내 아내와 가까이 말라는 말일세. 이 첫째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주게."

 

하고 말을 끊고 갑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하는 것이 갑진의 대답이었다.

 

"둘째는, 만일 내 아내가 자네 아이를 배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말없이 호적에 넣을 테니 그 아이에 관해서 자네가 일생에 아무 말도 아니할 것을 약속해야 하네."

 

"그것도 그러지."

 

"나는 자네가 약속을 지켜 줄 사람으로 믿네."

 

"그렇게 믿게그려. 퍽 미안허이."

 

하고 갑진은 그래도 좀 무안한 모양을 보였다.

 

"그럼, 난 가네."

 

하고 숭은 일어나려 하였다.

 

"가만 있게. 나도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갑진은 일어서려는 숭을 손을 들어 만류하며,

 

"나는 자네가 그 편지, 내가 보낸 편지를 불살라 버린 것으로 믿어 좋은가"?

 

"암, 믿게."

 

"고마우이. 그 편지가 자네 손에 남아 있는 동안 내가 도무지 맘 못 놓겠네. 고마우이. 이제 그만하고 가게."

 

숭은 아무 말없이 갑진의 방에서 나갔다. 나와서 구두를 신으면서 곁에 놓인 여자의 구두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구두끈 매던 손을 쉬고 잠깐 놀랐다. 이 칠피 구두는 분명히 혼인 때에 마춘 두 켤레 구두 중의 하나였다. 어디가 그러냐고 특징을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렵지마는 숭은 정선이가 이 구두를 신고 저와 함께 놀러다니던 것을 기억한다. 끝이 너무 뾰족해서 보기 흉하다고 숭이가 한번 말한 것을 기억하고 다시는 신지 아니하고 두었던 그 클로버 무늬 놓은 구두다.

 

숭은 다시 신 끈 매기를 시작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뚜벅뚜벅 뒤도 아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잘 가게. 못 나가네, 고마우이."

 

하는 갑진의 소리가 숭의 뒤를 따라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