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어떻게 어느 발로 오는지 모르게 재동 파출소 앞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그는 마음속에,
"정선이가 와 있고나. 재판소 간 틈을 타서. 가만 두고 가? 가만 두고 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에 숭은 두 손으로 마음의 귀를 꽉 막고 달려온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파출소 앞까지 다다라서 숭은 잠깐 발을 멈추었다.
"이 계집이 곧 나오나 아니 나오나, 어떤 꼴을 하고 나오나, 나를 대하면 어떤 낯을 들려나. 그것을 보아야 속이 풀리겠다"
하는 생각에 진 것이다.
숭은 아까 올 때보다도 더 급한 마음으로 재동 골목으로 달려 올라갔다. 갑진의 집의, 대문이 바라보이는 데 몸을 숨기고, 마치 사냥꾼이 몰려온 짐승을 기다리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두커니 섰기도 싱거워 서성서성 오락가락하였다. 사람이 지나갈 때면 어떤 집을 찾는 듯한 모양을 하였다.
숭은 제 이 태도가 대단히 점잖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의 뇌세포는 충혈이 되어서 평소의 냉정한 판단력과 굳은 의지력이 두툼한 반투명체의 헝겊으로 한벌 싼 것과 같았다.
정선의 편에서 어찌하였던가. 숭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 들리게 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갑진은 얼이 빠진 사람모양으로 숭이 나가던 문을 향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는 갑진은 그의 독특한 기술로 제 마음에 서리었던 모든 불쾌한 것, 부끄러운 것을 쓸어버리고 평상시와 같은 유쾌한 기분을 지을 수가 있었다.
갑진은 부러,
"하하하하."
하고 너덧 마디 너털웃음을 치고,
"놈팡이 갔어, 이리 나와."
하고 반침문을 열었다.
반침문을 연 갑진은 입과 눈과 팔을 한꺼번에 벌렸다. 그리고,
"정선이!"
하고 불렀다. 정선은 입술이 하얗게 되어서 기색해 있었다. 눈은 빤히 떴으나 그것은 죽은 사람의 눈과 같았다. 정선은 경련을 일으킨 듯이 떨었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매를 피하는 어린애와 같이 몸을 쪼그리고 있었다.
시체를 몹시 무서워하는 버릇을 가진 갑진은 전후 불구하고 벼락같이 문을 차고 마루로 뛰어나가면서,
"누구 좀 와!"
하고 소리소리 질렀다.
갑진의 소리에 놀란 집 사람들은 우 몰려나왔다. 정선을 반침 속에서 끌어내어 사지를 주무르고 얼굴에 물을 뿜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그러나 정선의 정신은 들지 아니하고 경련은 그치지 아니하였다.
"정선이, 정선이 정신 차려!"
하고 갑진은 황겁하여 정선의 몸을 힘껏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시체라는 무서움이 덜한 것이었다. 갑진은 정선이가 이대로 죽어 버린다 하면 그것이 경찰에 보고되어야 하고, 제가 불려 가서 취조를 받아야 하고, 갑진이가 원수같이 미워하는 신문기자들을 만나야 하고, 저와 정선과의 이야기가 신문에 올라야 하고 하는, 법률 배운 사람에게 올 만한 모든 생각을 하매 도무지 귀찮기가 짝이 없었다.
"윤 참판을 무슨 낯으로 보아!"
하는 생각도 나고,
"○○ 은행에 취직 문제 있던 것도 이 사건 때문에 흐지부지되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이 나매 정선이가 더할 수 없이 미웠다.
갑진은 집 사람들이 모인 기회를 이용하여 제 변명을 하느라고,
"글쎄 웬일야. 무어 의논할 말이 있다고 와 가지고는 말도 다 끝내기 전에 제 손으로 반침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서는 저 꼴이란말야."
하고 알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들을 뿐으로 있던 사람들 중에서 새로 들어온 어멈이,
"지랄병이 있나요"?
하고 유식한 양을 보였다.
"옳지, 지랄이로군. 간질야."
하고 갑진은 좋은 말을 발견한 것을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