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사랑문을 밀었다. 그것은 쉽게 안으로 열렸다. 무에라고 찾나?

 

"김 선생 계셔요"?

 

하고 용기를 내어 불렀다.

 

"어, 거 누구? 용자야"?

 

하고 영창을 열어젖히는 것은 갑진이었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모양으로 머리가 부스스하고 꾸깃꾸깃한 베드로우브를 입었다.

 

"아, 이거 누구야"?

 

하고 제아무리 갑진이라도 이 의외의 방문객에게는 놀라는 모양이었다.

 

정선이가 하도 쌀쌀하게 구는 데에 갑진은 좀 무안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아니꼬운 계집년이라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정선의 심상지 아니한 태도에는 갑진도 염려가 아니될 수 없었다. 갑진은,

 

"심상지 않기로 무슨 상관야. 형편 따라서 잡아뗄 거면 떼고, 또 정선이를 좀더 가지고 놀 수 있으면 놀면 그만이지. 먹을 것을 가지고 온다면 데리고 살아도 해롭지 않고, 적더라도 오늘 심심한데 이왕 찾아온 정선이니 빨 수 있는 대로 단물을 빨아먹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오류장 한번에 벌써 김은 많이 빠졌지마는"

 

이런 생각을 하며 갑진은 정선을 어떤 모양으로 취급할까를 연구하느라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정선도 갑진을 찾아오기는 하였지마는 도무지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남의 아내로서 간통한 김갑진을 찾아와서 본 남편 속일 의논을 하게 된 것은 고등 교육까지 받지 아니하더라도 여자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올라오셨어요."

 

하고 정선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이라니"?

 

하고 갑진은 다 알아들으면서도 슬쩍 시치미를 뗐다.

 

"허 변호사가 올라오셨어요. 오늘이 고등법원에 공판이 있는 날이 되어서."

 

하고 정선은 갑진이가 시치미 떼는 것이 미우면서도 한번 더 설명하였다.

 

"어, 그거 잘됐구려. 축하합니다."

 

하고 갑진은,

 

"그래서 그 기쁜 말씀하러 날 찾아왔소? 허 변호사가 왔으면 어떡하란 말요"?

 

하고 정선을 힐난이나 하는 듯한 어조다.

 

"허 변호사가 올라오셨으니 내게 편지를 하시거나 전화를 거시거나 찾아오시거나 하시지 말란 말씀야요."

 

하고 정선은 정색하고 말하였다. 이것으로 정선은 할 말을 다 한 것이었다. 이제는 돌아가리라 하고 일어서려는 것을 갑진은 치맛자락을 잡아당기어 앉힌다.

 

"놓세요! 이게 무슨 짓야요"?

 

하고 정선은 큰 욕을 당하는 듯한 분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노할 게 있소"?

 

하고 갑진은 유들유들한 태도를 지으며,

 

"치맛자락을 좀 잡아당기었기로 그렇게 노여실 것이야 있소. 정선이가 다른 사내 앞에서는 얌전을 빼는 것도 좋겠지마는 내게 대해서야-내야 치맛자락 아니라 속옷자락을 끌었기로 노할 게 있소? 자 앉으우."

 

하고 기어이 치맛자락을 끌어 앉히고 나서,

 

"그래, 당신은 숭이 녀석한테 우리들의 연애를 감쪽같이 숨길 작정이오"?

 

하고 픽 웃는다.

 

"애고, 망칙해라. 연애란 또 무어야."

 

하고 정선은 악이 난 판에 모든 것을 다 잡아뗄 생각이었다.

 

"허허, 아 이런 변 보았나."

 

하고 갑진은 세상이 들어라 하는 듯이, 어성을 높이며,

 

"허허, 요새 고등교육 받은 현대 여성의 연애관 어디 좀 들어 볼까. 우리네 무식한 구식 남성은 당신과 나와의 관계쯤 되면 연애로 아는데, 그럼 좀더 무슨 일이 있어야 연애가 되는 것이오? 당신네 이른바 영과 육과 둘로 갈라서 아무리 육이 합했더라도 영만 합치지 아니하면 연애가 아니란 논법이구려. 허허, 자, 어디 우리 정선이 연애 좀 받아 봅시다그려."

 

하고 갑진은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정선을 놀려먹었다.

 

정선은 손을 들어서 이 악마 같은 사내의 뺨을 열 번이나 갈기고 싶었다.

 

정선이가 칼날 같은 눈으로 한참이나 노려보는 것을 보고 갑진은,

 

"아서, 서방질은 할지언정 남편을 속여서야 쓰나. 했으면 했노라고 하구려. 그래서 숭이 녀석이 이혼하자고 하거든 얼씨구나 좋다 하고 해주어 버리지. 그리고 나하고 삽시다그려. 해 먹을 것이 없거든 우리 카페나 하나 낼까. 당신은 마담이 되고 나는, 나는 글쎄 무엇이 될까, 반또오(일본 말, 서사라는 뜻)가 될까, 아니 싫어, 반또오가 되면 뒷방에서 치부나 하고 앉았게.

 

우리 정선이는 어떤 놈팽이하고 손을 잡는지, 입을 맞추는지 알지도 못하고, 하하하하. 그야 카페 해먹는 신세에 여편네 손과 입쯤이야 달라는 손님에게 아니 줄 수 없지마는, 도무지 우리 정선이가 한번 서방을 배반한 버릇이 있는 우와끼모노(잡놈, 잡년이라는 일본 말)가 되어서 내 님이 장히 맘을 못 놓을걸, 하하하하, 안 그래"?

 

하고 번개같이 달겨들어 정선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