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갑진의 뺨을 갈겼다. 그 소리가 찰칵하고 매우 컸다.

 

갑진은 전기에 반발되는 물체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뒤로 물러앉았다. 베드로우브 자락이 젖혀지며 털 많은 시커먼 다리가 나타난다.

 

"옳지, 사람을 때린다."

 

하고 갑진은 정선이가 손으로 때린 뜻을 정선의 눈에서 알아내려는 듯이 뚫어지도록 들여다 보았다. 그는 그의 성격의 한 귀퉁이에 있는 천치스러운 일면을 나타내 보이고 있었다.

 

정선은 벌떡 일어나서 옷소매로 입을 수없이 씻었다. 마치 입술에 묻은 지극히 더러운 무엇이 씻어도 아니 씻기는 것 같았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악마에게 걸렸어!"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옳지 이제 와서."

 

하고 갑진은 정선에게 얻어맞은 뺨을 만지면서 빈정대었다.

 

"흥, 되지못하게 인제는 나까지 배반하러 들어! 허숭이를 배반하고, 김갑진이를 배반하고, 그 담에는 또 누구? 오요, 이건영이란 놈이 자주 정동 근처로 다니더라니. 해도 안될걸. 내나 하길래 저하고 카페라도 내자고 그러지, 건영이 따위야 어림이나 있나. 세상이 무서워서, 비겁해서-대관절 숭이놈한테 간통 고소를 당하더라도 눈썹 하나 까딱 안할 나와는 다르거든.

 

싫건 고만 두어, 가고 싶은 데로 가란 말야. 건영이놈하고 붙든지 호떡장사 호인놈하구 붙든지 내가 아랑곳할 게 아니란 말이다. 내란 사람은 어떤 계집이든지, 서시(西施), 양태진(楊太眞)이라도 말야, 꼭 한번 건드리면 다시 돌아볼 생각도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한번 건드린 계집애에게다 책임을 진다면 내 몸에 털을 다 뽑아서-참 불경에서 나오는 말 같구나. 내 몸에 털을 다 뽑아서 책임을 수를 놓아도 다 못 놓는단 말이야.

 

이건 왜 이래, 괜히시리, 오, 숭을 속이고 감쪽같이 허숭 부인입시오 하고 학교에도 가고 예배당에 점잔을 빼 보시게? 흥, 고런 소갈머리를 가지니깐 계집이란 하등 동물이란 말이다. 허기야 학?969교시오 예배당입쇼 하는 숙녀들도 정선이보다 나은 년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마는, 어쨌으나 여자란 속임과 거짓으로 빚어 만들었단 말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줄을 알고 여자를 대하니깐 그렇지, 숭이 같은 시골뜨기 숫보기 녀석들은 여자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같이 알고, 무릎을 꿇고 있다가 소금 오쟁이를 지는 것이어든. 그래도 여보 정선이, 숭이놈도 노상은 바지저고리만은 아니어든. 무어 하나 보여 줄까, 내가 그걸 어디 두었더라, 그 쑥의 편지를."

 

하고 일어나서 무엇을 뒤진다.

 

갑진은 책상 설합을 빼어 동댕이를 치고 양복 저고리를 내려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져 보고는 홱 내던지고, 마치 가택 수색하는 순사모양으로 한참 수선을 떨더니 마침내 제가 입고 있는 베드로우브 주머니에서 옥색 봉투 하나를 꺼내어 무슨 훌륭한 것을 자랑이나 하는 듯이 알맹이를 빼어서 정선에게 내어 던졌다.

 

정선은 봉투 뒤 옆에 "辯護士 許崇法律事務所"라고 박힌 것을 보고, 또 편지 글씨가 숭의 것인 것을 알았다.

 

정선은 무서운 것을 예기하는 마음으로 그 편지를 내려 읽었다. 정선이가 갑진이하고 오류장 갔던 것을 안다는 것, 갑진이더러 다시는 정선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 갑진의 허물을 용서한다는 것, 갑진이가 정선에게 보낸 편지는 불살라 버리겠다는 것 등이 있다. 정선은 오직 정신이 아뜩함을 깨달았다. 그 편지를 한 손에 든 채로 얼빠진 것같이 갑진을 바라보았다.

 

갑진은 정선이가 그 편지를 다 읽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정선이가 저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자, 보아요. 놈팡이가-숭이놈이 노상 숙맥은 아니라니까. 허기야 그놈이 내가 정선에게 한 편지를 받아 보았단 말야. 어젯밤 오류장 생각은 참 못 잊겠다고, 정선의 부드러운 살맛을 못 잊겠다고, 숭이 녀석이 오기 전에 또 한번 만나자고 했든가, 원. 그날 말요, 오류장 다녀온 이튿날 몸살이 나서 드러누웠으랴니깐 우리 정선이 생각이 나서 못견디겠더라고, 그래서 좀 오라고 한 편지란 말야. 아무리 기다리니 생전 와야지, 왜 안왔어"?

하고 정선을 한번 흘겨보고,

 

"아무려나, 숭이녀석이 쑥은 쑥이거든. 그래, 제 계집 빼앗은 사내더러 용서해 주마는 다 무에야. 나 같으면 다른 놈이 내 계집의 손목만 한번 건드려도 그놈을 당장에 물고를 내고 말텐데, 글쎄 고런 못난이가 어디 있어. 꼭 오쟁이 지기 안성마춤이라. 흥, 게다가 또 시큰둥하게시리 내 죄는 다 용서할 테라고, 증거품 될 편지는 불살라 버리겠다고, 그게 다 쑥이거든. 그 편지를 왜 불을 살라버려 글쎄. 제게 유리한 적의 증거품을 제 손으로 인멸을 해? 허, 그리고 변호사 노릇을 해먹어, 똥이나 먹으라지, 오쟁이나 지고, 하하."

 

하고 혼자 수없이 지껄이다가 문득 잊었던 무엇을 생각해 내는 듯이,

 

"아 참, 그래 그 쑥(숭을 가리키는 말)이 정선이 보고 무어라고 해"?

 

하고 그래도 얼마큼 염려되는 표정.

 

"그 못난이가 암말도 못하겠지"?

 

"……"

 

"그깟놈 무어라고 말썽부리거든 내게로 와요."

 

"……"

 

"그런데 그놈이 내 편지를 정말 불을 살랐는지 알 수 없거든. 제 말대로 정말 불을 살랐으면 땡이지마는 이놈이 그것을 움켜 쥐고 있으면 걱정이란 말야. 그 편지 한 장으로 간통죄가 성립되거든. 까딱 잘못하면 우리 둘이 콩밥이오. 허기야 웬걸 그 시골뜨기놈이 언감생심으로 간통 고소를 하겠소마는 정선이가 잘 좀 무마를 해요. 내가 과히 강짜는 아니할 테니."

 

하고 또 갑진은 정선을 건드리려 한다. 정선은,

 

"글쎄, 편지질은 왜 해"?

 

하고 갑진을 뿌리치고 목도리를 들고 나가려는 것을 갑진이 아니 놓칠 양으로 뒤로 팔을 둘러 정선을 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