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자른단 말은 차마 숭의 입에서 나오지 아니하였다. 머리에 흠이 생기는 것만도 병신이 되는 것으로 아는 정선이다. 그만한 병신으로도 살기가 싫다는 정선이다. 만일 다리를 잘라버린다면 어떻게나 놀랄까, 슬퍼할까, 하면 차라리 알리지 말고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의사도 만일 정선을 좀더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면, 직접으로 한번 의논을 하였을 법도 하지마는 아주 고약한 것들로 값을 쳐놓은 터이므로 다시 물어보려고도 아니하였다.

 

수술실의 준비는 다 되었다. 신문 기사를 보고 화를 낸 윤 참판은 수술한다는 숭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도 아니하고 죽어도 모른다고 집안 사람들을 보고 화를 내었다. 이리하여 한 사람의 천하에 오직 한 사람뿐의 동정을 받으면서 정선은 수레에 실려 수술실로 옮기어갔다.

 

정선은 다친 무릎을 약간 째는 것으로만 알고 수술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수술대에 처음 오르는 정선에게는 여러 가지 무서움이 있었다. 간호부가 하얀 헝겊으로 눈을 싸매어 수술실의 흰 천장과 곁에 선 사람들이 안 보이게 될 때에 정선은 죽음의 그림자가 곁에 선 듯함을 깨달아 몸에 소름이 끼쳤다.

 

간호부들이 정선의 옷을 벗길 때에 정선은 본능적으로 다리를 굽히려 하였으나 물론 다리가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정선의 몸은 아주 알몸이 되었다. 정선은 흰 옷을 입고 방수포 앞치마를 두른 의사들이 솔을 가지고 손을 씻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수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어떤 손이 두 발목을 무엇으로 비끄러 맬때에는 그러한 수치 정도는 스러지고, 오직 절망의 둔한 슬픔이 판토폰 주사에 마취하고 남은 의식을 내려누를 뿐이었다.

 

전신에 무슨 선뜩선뜩하고 미끈미끈한 액체를 바르고 무엇으로 문지르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냉혈 동물의 몸이 살에 닿는 듯이 불쾌하였다.

 

"하느님!"

 

하고 정선은 속으로 불렀다. 한없이 넓고 차고 어두운 허공에 저 한 몸이 발강댕이로 둥실둥실 떠서 지향없이 가는 듯한 저를 의식할 때에 정선의 정신은 "하느님!" 하고 부르는 것밖에 다른 힘이 없었다.

 

딸그락딸그락, 사르릉사르릉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유리판 한 탁자 위에 수술에 쓰는 메스들을 늘어놓는 소리일 것이다. 그 백통빛 날들! 정선은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이 나를 어찌할 작정인가"

 

하고 정선에게는 의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제 몸이 어찌 되든지 정선은 반항할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머리맡에 사람이 가까이 오는 모양이더니 코 위에 무엇이 덮이고 온도 낮은 액체인지 기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무엇이 입과 코와 목과 폐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듯 감각이 생겼다. 그것은 일종의 향기를 가진 냄새였다.

 

"클로로폼? 에테르"?

 

하고 정선은 몽혼약의 이름을 생각하였다. 몽혼은 심히 무섭고 불쾌한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반항할 수는 없었다. 되는 대로 되어라 하고 정선은 마음놓고 숨을 들이쉬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다행이다-이렇게도 생각하였다.

 

"하나, 둘, 셋, 넷-이렇게 세어보시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김 의사의 소리였다. 조금도 동정을 가지지 아니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정선은 하라는 대로,

 

"하나, 둘, 셋, 넷…."

 

하고 세었다.

 

정선은 마음이 괴롭고 슬펐다. 이런 때에 남편의 소리가 들리고 손이 만져졌으면 어떻게나 좋을까 하였으나 제 두 손을 잡은 이는 남편은 아니었다. 맥을 보는 의사의 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하는 정선의 소리가 숭의 가슴을 찔렀다. 그 떨리는 소리, 울음 섞인 소리는 숭으로 하여금 곧 수술실에 뛰어들어가서 정선을 안아 내오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하였었다.

 

"사랑의 무한, 아! 왜 내가 그 같지 못하였던고"?

 

하고 숭은 후회하였다. 정선의 다리를 끊는 것이 저라고 숭은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렇게 병신이 되기 싫어하는 정선의 다리를 끊어, 끊인 줄을 아는 때의 정선의 슬픔, 끊인 다리로 남의 앞에 나설 때의 정선의 괴로움, 그것을 생각할 때에 숭은 뼈가 저렸다.

 

"지극히 사랑해주자. 이제부터야말로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해주자"

 

이렇게 숭은 다시금 맹세하였다.

 

"하나, 둘, 셋, 넷…."

 

하는 소리도 이제는 아니 들렸다. 다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버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정선의 하얀 다리 바로 무릎 위에는 이 박사의 손에 들린 백통빛 나는 칼이 한번 득 건너갔다. 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나와서 하얀 살 위로 흐르려는 것을 간호부의 손에 들린 가제가 쉴새없이 빨아들인다.

 

칼로 베어진 살을 역시 백통빛 나는 집게로 집어 좌우로 벌려놓고, 혈관을 골라 졸라매고, 그리고는 골막을 긁어 젖히고, 또 그리고는 톱을 들어 다리뼈를 자른다. 스르륵스르륵하는 톱질 소리가 고요한 수술실 안에 꽉 찬다. 톱이 왔다갔다 스르륵 소리를 낼 때마다 정선의 다리는 경련을 일으키는 모양으로 떨린다. 그리고 정선은 아프다는 뜻인지 싫다는 뜻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댄다.

 

이따금 소리를 버럭 지를 때도 있으나, 특별히 아픈 줄을 아는 때문인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맥을 보는 의사는 입술을 떨면서 맥을 세었다. 간호부들은 의사의 이마에 땀을 씻을라, 가제를 주워 섬길라 바빴다. 그러나 소리는 없었다.

 

의사들은 마치 눈과 손만 가진 사람인 듯하였고 간호부들은 마치 귀와 눈만 가진 사람인 듯하였다. 의사의 눈치와 외마디 소리에 기름 잘 바른 기계 모양으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였다.

 

"실수 없이, 빨리빨리."

 

이밖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