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의사는 다리 끊은 자리의 붕대 교환을 하게 될 때에 숭은 병실에서 나오지 아니하면 아니되게 되었으므로 정선은 비로소 제 다리가 끊겨진 것을 보았다.

 

붕대 교환이 끝나고 숭이 혹시 정선이가 다리 끊긴 것을 알지나 아니하였나 하는 근심을 가지고 병실에 들어갔을 때에는 정선은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숭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두 손으로 낯을 가리었다.

 

숭은 다 알았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울지 마우. 이제는 살아났으니 울지 마우."

 

하고 숭은 낯을 가리운 정선의 팔목을 붙들어서 낯에서 떼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선은 떼 쓰는 어린애 모양으로 더욱 꼭 누르고 손을 떼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달랠수록 더욱 머리를 흔들고 울었다.

 

"여보."

 

하고 숭은 정선을 한 팔로 안으면서,

 

"내가 끊으라고 해서 끊었는데 어떠오? 당신이 다리 하나가 없더라도 내가 일생에 전보다 더 잘 사랑해줄 텐데 무슨 걱정이요"?

 

하고 위로하였다.

 

"왜, 나한테 말도 아니하고 다리를 자르게 했소"?

 

하고 정선은 낯을 가리었던 손을 떼어 성을 내었다.

 

"그냥 두면 다리가 점점 썩어들어가서 더 많이 자르게 될는지도 모르고, 또 더 심하면 생명에 관계될는지도 모른다고 하니, 당신이 고통을 받는 것도 차마 볼 수 없고 또 죽기도 원치 아니하고 보면 자를 수밖에 없지 않소"?

 

하고 숭은 알아듣도록 설명을 하였다.

 

"싫어요, 싫어요. 죽는 게 낫지, 다리 병신이 되어 가지고 살면 무얼 해요"?

 

하고 정선은 더욱 흥분하였다.

 

"이렇게 정신을 격동하든지 몸이 움직이면 출혈이 될 염려가 있다고 합디다. 출혈이 되면 큰일나오."

 

하고 숭은 정선의 손을 만지며 애원하였다.

 

다리를 자른 데 대한 정선의 원망은 여간해서 가라앉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가끔 숭을 볶아대었다. 그럴 때마다 숭은 침묵을 지키거나 위로하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지나 이주일 지나 병이 차차 나아가는 동안에 정선은 숭의, 침식을 잊고 저를 위하여 애쓰는 정성에 감동이 되었다. 더구나 친정에서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세상이 다 저를 버려서 죽든지 살든지 상관을 아니하는 이 때에 제일 저를 미워해야 옳을 남편이 이처럼 전심전력을 다하여 저를 간호한다는 것을 뼈가 저리도록 고맙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용서하세요."

 

하고 정선은 가끔 자다가 깨어서는 저를 지키고 앉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며칠 아니면 퇴원할 테니, 퇴원하거든 서울로 가서 의족(고무로 만든 다리)을 만들어가지고 살여울로 갑시다."

 

하는 것이 숭의 대답이었다.

 

"싫어요, 난 서울은 안 가요. 이 꼴을 하고 서울을 가"?

 

하고 정선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끝에는 얼굴이 검은 빛으로 흐렸다.

 

"그럼 의족은 어떻게 하오"?

 

"여기 불러오지는 못하오"?

 

"불러오면 돈이 많이 들지. 이제는 당신이나 내나 다 몸뚱이 하나뿐이요. 이제부터는 우리 둘이 벌어먹어야 하오."

 

이 말은 정선에게는 무서운 말이었다. 참 그렇다. 돈이 없다. 십여 만 원 값어치 재산은 숭이가 다 친정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고 말았다. 이 꼴이 된 정선을 아버지가 다시 돌아볼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뿐더러 벌어먹는다는 것, 제 손으로 제 옷과 밥을 번다는 것은 정선으로는 일찍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제 손으로 벌어먹는다는 것은 천한 사람이나 하는 일 같았다. 재산 없는 몸, 그것은 마치 젖 떨어진 젖먹이와 같이 헬플레스한 일이었다. 앞이 막막하였다. 그래서 정선은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어떻게 벌어먹소"?

 

하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한 마디를 하였다.

 

"왜 못 벌어먹어"?

 

하고 숭은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야 당신이 변호사 노릇을 하면야 벌어도 먹지마는 살여울 가서야 어떻게 벌어먹소"?

 

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땅 사놓은 것이 있어. 우리 두 식구 먹을 것은 나오우. 내가 혼자 농사를 지어두. 당신은 옷만 꿰매시구려."

 

하고 숭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