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은 눈을 들어서 영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주 자기를 돌아다보는 눈 - 그것은 결코 당대의 권문 대제학 김병학의 눈이 아니요, 일개 사람 - 서로 접근할 수가 있는 '사람' 김 병학의 눈이었다. 흥선은 잠시 영초의 눈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어섰다. 영초의 눈에 조금이라도 불쾌한 자위가 있었으면 여니와 흥선은(까닭은 모르지만) 호의로 찬 영초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침방에 들어가 보매 시동(侍童)이 의복 일습을 보료 아래 녹이고 있었다. 갓에서 버선, 대님, 허리띠며 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의복 일습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다.

 

흥선은 거기서 시동의 손을 빌어서 옷을 갈아입었다. 벗어 놓고 보니 자기의 낡은 옷은 구기기는커녕 때도 꽤 많이 끼어 있었다. 그것을 벗어 던지고 흐늘어지는 비단옷을 입고 나니, 가난에 젖은 이 공자의 몸은 마치 하늘로 날아올라라도 갈 듯하였다.

 

"우화 등선 - 그러나 몸이 헤픈 것이 옷을 입은 것 같지를 않소."

 

이것이 이 좋은 새 옷을 준 데 대한 흥선의 인사였다.

 

영초는 미소하면서 대답하였다.

 

"변변치 않은 옷이외다."

 

"과연 변변치 않소이다. 대감께는 많이 있는 옷이니 변변치 않을 것이고, 내게는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변변치 않고 -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주어야 그럴듯한 인사도 못 받는 법이외다. 하하하!"

 

이 자기에게 극진한 호의를 보여 주는 영초에게 대하여 얼마의 조력을 청하고 싶은 생각은 뒤를 이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 위에 더 무엇을 청구할 만한 용기까지는 생겨나지를 않았다.

 

영조는 자기의 초헌( 軒)까지 등대하여 두었다가 돌아가는 흥선으로 하여금 타게 하였다.

 

비단옷에 감긴 몸을 초헌에 싣고 구종 별배를 앞뒤에 단 이 공자 - 세상일 것 같으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일지나, 흥선은 마치 위압된 듯이 몸을 초헌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초헌에 몸을 싣고 구중 별배를 뒤에 단 이 호화로운 공자가 마음 가운데는 당장의 끼니와 쌀 걱정까지 하는 사람이라고는 알 사람이 없었다. 호화로운 초헌에 대하여 길가는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였다.

 

이리하여 흥선은 표면으로는 위세 좋게 자기의 댁으로 돌아왔다.

 

집에까지 돌아온 흥선은 대문 밖에서 영초의 하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마치 피하듯이 몰래 사랑으로 들어갔다. 비록 가난은 하나마 자존심이 지극히 놓은 그, 아침에 부인에게 부탁을 받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변명을 하기가 귀찮았다.

 

팽 경장에게 눈물나는 수모를 받았다는 말은 체면상 못할 일이었다. 김병학에게 술을 얻어 먹고 옷을 얻어 입고 왔노라는 말도 역시 못할 말이었다. 이 모든 못할 말들을 피하기 위하여 흥선은 몰래 사랑으로 기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에는 뜻밖의 광경이 그의 눈을 둥그렇게 되게 하였다.

 

당연하게 추울 사랑이었다. 해어진 보료며 해어진 장침(長枕)이며 해어진 안석이 놓여 있을 사랑이었다. 아침에 자기가 나갈 때도 그러하였다. 다시 돌아온 지금에도 당연히 그러하여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방안에서 첫 번 주인을 맞은 것은 뜨뜻한 공기였다. 서늘하고 음침하여야 할 방에 뜨뜻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고, 아랫목에는 비단으로 꾸민 새로운 보료며 안석이며 장침 사방침 들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을 문창도 어느 틈에 모두 깨끗이 발리었다. 이(영초에게 얻어 입은 것이나마) 비단옷에 감긴 공자에게는 그다지 손색이 없는 방으로 어느덧 변하여 있었다.

 

"?"

 

아직 술이 채 깨지 않은 흥선은 눈을 이리 찡그리고 저리 찡그리며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자기의 집이었다. 내다보면 쓰러져 가는 아래채며 거미줄 천지의 추녀며 - 자기의 집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쓰러져 가는 집의 방안만은 아침과는 형태를 완전히 달리한 것이었다.

 

흥선은 잠시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 있을 동안 이 온갖 고난을 다 보고 겪은 흥선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흥선은 잠시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 있을 동안 이 온갖 고난을 다 보고 겪은 흥선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흥선은 이것을 부인의 한 일로 알았다. 자기를 내보내기는 하였지만, 아무리 하여도 변통해 올 듯싶지 않아서 부인이 직접 다른 방면으로 활동을 하여 과세의 준비를 넉넉히 한 것이어니, 이렇게 생각하였다. 궁핍하여 부인에게까지 이런 수고를 끼치는 것이 더욱 마음에 불안하였다.

 

오늘 두 개의 인정을 보았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구박만 받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수모만 받아서, 울분과 반발성만 마음속으로 잔뜩 길렀던 흥선은 오늘 본 두 개의 인정 때문에 눈물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