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네.”

 

그 날 밤 조성하가 자기의 장인 이 호준을 찾아서, 거기서 또 다시 장인에게 흥선군의 진정한 인격을 묻자 호준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만치는 말할 수가 있네. 즉 자네도 알다시피 이전에 그 분은 사복시 제조(提調)로 계시고 나는 그 아래 주부로 있을 적에 친히 뵙던 그 분과, 지금의 대감과는 판이하게 달라. 강직하시고 활달하시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 않으시고, 가난을 가난으로 아시지 않더니, 이즈음은 그 날의 강직이 다 없어지시고 가난에 시달린 한 생원님같이 되시지 않았는가. 사람의 천성이란 그렇게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니. 이전에 그렇게 강직하시던 이가 갑자기 지금같이 변하신 것이, 첫째로 머리를 끄덕이지 못할 일―그 밖에 또 한 가지, 자네도 대감 댁에 출입하면서 보았지만, 그 댁 둘째 도령이 가난에 젖기 때문에 동리 허튼 애들과 돈치기나 하며 연이나 날리면서 놀지만, 인사 범절이며 학문 지식이 금중(禁中)에서 성장한 아기씨들보다도 훨씬 낫지 않은가> 이게 모두 흥선군의 교훈에서 나온 것일세 그려. 술이나 잡숫고 투전판이나 찾아 다닌다는 소문이 높은 대감이, 어느 겨를에 무슨 필요로 그렇듯 후사 교훈에 힘을 쓰시겠나? 이런 것으로 보아서 대감의 그―소위 주책없다는 일이 모두 지어서 하시는 일이 아닌가 하네.”

 

“네,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무슨 하교라도 계시면 견마의 힘을 다 쓰려는데, 대감께서는 저를 당초에 믿지 않으시고, 여전히 제게 향해서도 세상을 대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하십니다.”

 

성하는 쓸쓸한 듯이 장인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

 

“그것은 자네게뿐 아니라 내게도 그러시네. 벌써 십 년 지교가 있고 사돈의 의가 있는 내게도 그러시니까. 아직 젊은 자네에게 왜 마음을 보이시겠나? 자네도 그만치 알고 모든 일을 나무럽게 알지 말고 꾸준히 그냥 모시게. 상린(常鱗)이 아닐세. 상린이 아니야. 언제까지든 못 가운데 계실 분이 아니고, 구름만 얻으면 능히 하늘을 보실 분일세. 대비마마께서는 어떻게 보시나?”

 

“마마께서도 제가 뵈올 때마다 흥선군의 안부를 물으시는 품이 나쁘게 보시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것 보게. 웬만한 지자(知者)는 사람으로 여기시지 않는 대비마마께서 그렇게 보신다니, 이게 상린의 염이나 낼 노릇인가?”

 

그리고 호준은 머리를 뒤로 높이 젖히면서 혼잣말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종실의 가장(宗室家長)과 종실의 용(龍), 적지 않은 풍운이 일어날 것이로다.”

 

어서 일과저! 성하는 축수하였다. 자기도 왕실의 척권의 한 사람이요, 더구나 현 종친의 어른 되는 대왕 대비를 연분삼은 척권이지만, 김대비의 척권되는 김씨 일파의 너무도 푸르른 세력에 눌려서 손 하나 들썩할 자유도 없는 조성하는, 그 김씨의 세력을 미워하는 심정에서도 하루바삐 종실의 가장과 종실의 용의 악수와 활동을 바랐다.

 

조성하가 장인 이 호준의 댁을 하직하고 나선 것은, 야반의 인견은 이미 울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포교나 순라군의 무리밖에는 보이지 않는―밤도 이미 깊은 뒤였다.

 

그 날 밤 자리에 들어가서도 성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대문에 높이 걸려서 그 활달한 필적을 사백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자랑하는 '崇禮門'의 석 자가 불 끄고 누워 있는 그의 눈앞에 연하여 어릿거렸다.

 

―대감! 양녕대군이 됩소사. 결코 세상이 평하는 바와 같은 대감이 아니시기를 바라옵니다.

 

성하는 때때로 소리까지 내어서 중얼거렸다.

 

<운현궁의 봄 2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