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대답지 않고 성가신 듯이 두어 번 코를 울렸다. 이 성가신 듯이 흥선이 코를 울리는 것을 성하는 미소로써 쳐다보았다. 한참을 흥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성하는 자세를 바로하며 흥선을 찾았다.
“대감!”
다시 흥선을 찾을 때에는 성하의 입가에 떠돌던 미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대신 얼마만큼 엄숙한 기분이 나타났다.
“대감께서는 시생을 어떻게 보십니까?”
“?”
“왜 마음에 계신 대로 말씀을 안 하시고 한 겹 감추어 가지고 계십니까?”
흥선은 그의 굵은 살눈썹 아래고 이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권문들을 찾을 때에 늘 그의 얼굴에 흐르던 비굴한 표정은 어디로 감추었는지, 그다지 표정이 없이 굽어 보는 그의 눈찌지만, 그 눈찌에는 사람을 위압하는 위엄이 있었다. 이 눈찌―위압적 눈찌를 성하는 감사한 듯이 우러러 보았다.
정월 초승, 흥선을 조대비께 안내한 이래로 조성하는 자주 흥선을 찾았다. 흥선도 성하를 자주 불렀다. 종실의 당당한 공자이지만, 가난한 살림을 오래 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이 여간 비루하게 되지 않았다는 흥선의 소문은 성하도 일찍부터 들었던 것이었다.
그랬더니 섣달 그믐날, 자기의 악장되는 이 호준이 부러 자기를 불러서 말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군 이하응씨는 결코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허튼방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 기행(奇行)이 있는지는 모르되, 그것은 기행으로 볼 것이지, 세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전하는 바와 같이, 눈살을 찌푸리고야만 능히 말할 수 있는 비루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또한 그런 일이 있다 칠지라도 그것은 무슨 다른 곡절 아래서 나온 일이지, 그의 인격과 품성은 고결하고 총명하기 당대에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종반에 사람이 많고 많으되, 눈 있고 귀 있고 손 있는 이는 그이 한 분만이시다. 호방(豪放)하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를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코 상린(常鱗)이 아니니라. 종반 가운데 국운을 회복할 만한 역량을 가진 분은 흥선 대감밖에는 없으리라.”
호준은 사위에게 이렇게 흥선의 인물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성하가 조 대비의 조카임을 이용하여, 흥선군을 조용히 조 대비께 뵈올 기회를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그 때를 기축으로, 그 뒤에도 성하는 여러 번 흥선 댁을 찾았다. 여러 번 찾으며 찾은 때마다 관찰하고 연구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이라는 인물은 도저히 그 속을 알아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비굴한 행동 비굴한 말을 예사로 하는 인물이었다. 그 수모를 받으면서도 대관 댁이며 대신 댁을 그냥 지근지근 찾을 때에 그의 얼굴에 떠도는 비굴한 미소―그것을 한낱 연극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래 가난에 젖고 또 젖어서, 그의 제이의 천성이 된 비굴한 성품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대체 그 비굴하게 구는 것이 한 개 연극에 지나지 못하다면, 그 때 받은 수모 때문에 이를 갈면서 분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수모를 받은 뒤에마다 이를 갈면서 분해한 뒤에도 이튿날만 되면 또한 여전히 지근지근 그들을 찾는 것은, 속이 썩고 또 썩은 인물이 아니면 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썩고 또 썩은 인물인가 하면, 또한 때때로는 엄격하고 추상 같은 그의 일면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둘째아들 재황을 데리고 조용히 이야기라도 하는 기회를 어떻게 엿보면, 그런 때에는 흥선의 얼굴에 있는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는 흥선의 어느 면이 참말 그의 면인지, 성하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놀라운 야망을 품고 있는 흥선은 한 개의 명우(名優)인가?
혹은 가난에 젖기 때문에 속의 속까지 썩은 가련한 공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