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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이 폐사되매, 양녕의 동생 효령대군(孝寧大君)은 형이 폐사가 되었는지라 자기가 당연히 세자가 될 줄 알고, 열심히 책상을 대하여 독서를 하였다. 이 모양을 본 양녕은 발길로 효령의 책상을 걷어찼다. 그리고 놀라서 쳐다보는 효령에게 은근한 소리로,
“어리석은 동생아, 충녕(忠寧)이 있다. 세자는 충녕이 될 것이다.”
고 깨쳐 주었다. 효령은 비로소 맏형 양녕의 속뜻을 알고, 궁을 벗어나서 절간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태종은 일찍이 금중(禁中)에 감나무를 심고 상완하였다. 어떤 날 그 감나무에 새가 앉아서 감을 쪼고 있었다. 그것을 본 태종은 좌우에 명하여 누구 저 새를 쏘라고 하였다. 그러나 꽤 멀리 감나무에 앉은 새를 쏘아 맞힐 자신이 있는 사림이 없어서, 모두들 먹먹히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동궁(양녕) 한 분밖에는 맞힐 이가 없소이다.”
고 하였다. 태종은 양녕을 불러서 쏘게 하였다.
과연 양녕은 첫 살로 명중시켰다. 양녕의 하는 일을 모두 밉게만 보던 태종도 여기에는 만족히 웃었다.
이것이 능히 치인이나 광인이 넉넉히 할 일일까?
글을 싫어한다는 평판이 높은 양녕의 필적은, 호활 뇌락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시원한 감을 일으키게 한다.
'讓寧爲世子 淫於聲色 不務學業'
이라 한 양녕이 어디서 그런 달필을 자아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