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면을 가진 그가 세상에 나와서는 한 잔의 막걸리를 위하여 비굴한 웃음을 연하여 웃으며, 한 점의 안주를 위하여 갖은 수모를 받으며, 권문세가들을 지근지근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창피를 창피로 알지 않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면을 가진 괴인의 진정한 정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풀려고, 성하는 머리를 깊이 가슴에 묻고 황혼의 거리를 방향 없이 왔다 갔다 하였다. 저녁 짓는 연기가 숨을 쉬기조차 힘들도록 가득해 있는 이 어둠과 냄새와 더러움의 거리를―

 

성하는 우뚝 섰다. 맞은편에 무슨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벌리고 섰으므로―

 

눈을 들어 보니, 지향 없이 황혼의 거리를 헤매고 있던 성하는 어느덧 남대문에 당도한 것이었다. 아래의 문에서 위의 누각으로 성하는 차차 차차 눈을 높이 올렸다. 차차 올라가던 눈은 숭례문(崇禮門)이라 쓴 커다란 현판에 가서 멎었다.

 

그 호활 뇌락(豪?牢落)한 필적의 현판을 잠시 우러러 볼 동안 성하의 낮에는 차차 미소가 나타났다.

 

필적의 주인인 양녕대군(讓寧大君)―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가 폐사된 양녕대군―

 

어렸을 적에 읽은 역사상의 사실이 걸핏걸핏 성하의 머리 한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님 왕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의 세째 동생 충녕 대군(忠寧大君)에게 있음을 알고, 양녕은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미친 체하고 치인(痴人)의 흉내를 내었다. 이리하여 아버님의 노염을 사서 폐사가 되고, 동생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어서, 후일 태종의 뒤를 이어 제 사대의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이 분이다.

 

당시 양녕대군은 아버님의 노염을 사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였나?

 

부왕의 부름을 있을지라도,

 

“몸에 탈이 있어서 못 가겠습니다.”

 

고 핑계하고 산과 들에 사냥을 다니던 양녕― 사월 파일날, 대궐의 담을 넘어 나가서 잡배들과 관등을 다니던 양녕― 달밤에 궁을 벗어나서 부랑자들과 짝을 지어 비파를 뜯으면서 거리로 헤매던 양녕― 잡놈 잡년들을 궁 담을 넘겨서 세자궁으로 끌어 들여 놀고 덤비던 양녕― 남의 아리따운 첩을 궁으로 뺏어다가 같이 즐기던 양녕― 허튼 소리를 흉내내며 대궐 뜰을 돌아다니던 양녕― 글을 읽으라면 굴은 안 읽고 다락에 놓은 새덫(鳥械)만 바라보고 있던 양녕―

 

이런 일들로 부왕의 노염을 사서 양녕은 뜻과 같이 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양녕의 사실 인격이 이렇듯 치인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