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과 그의 문객들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아까의 이야기를 그냥 계속하였다. 때때로 팽이 웃었다. 그러면 문객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웃고 하였다.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팽이 웃기만 하면 문객들은 이 세상에 다시없는 우스운 이야기인 듯이 방바닥을 두드리며 웃고 하였다.
웃목에 웅크리고 앉은 가난하고 세력 없는 공자 흥선의 가슴은 타는 듯하였다. 오래 겪어 온 모멸이며, 경험하고 또 경험한 수치이며, 너무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모멸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이 마비된 흥선이로되, 오늘은 유난히도 가슴 쏘았다. 일어서려 일어서려 몇 번을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그저 일어서기도 너무 싱거웠다. 여기서 일어서려면 땅을 한번 차고 발을 한번 구른 뒤에 왜가닥 하니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몸은 아무리 왕가의 피를 받은 흥선이로되, 권도로서 도저히 팽의 뒤 천 보를 따를 수 없는 그는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도로 나가려도 나갈 만한 볼미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아랫목에서는 한 토막의 이야기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팽이 앞에 놓였던 길다란 담뱃대를끌어 당겼다. 그러매 그의 앞에 있던 한 문객은 황급히 담배를 담아 바쳤다. 유황 성냥을 황급히 화로에 긋는 사람도 있었다. 한 대의 담배에 대하여 경쟁하듯이 제각기 팽의 심부름을 하였다.
팽은 담배를 붙여 물었다. 삼등초(三登草)의 푸르른 연기가 한순간 그의 얼굴을 감추었다. 그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하렬 때에 팽은 비로소 흥선에게 향하여 첫 말을 던졌다.
"아 참, 대감 언제 오셨소?"
흥선이 온 것을 이제사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마음이 이리 끓고 저리 끓던 흥선이었다. 그러나 오랜 동안의 그의 습관으로 그의 얼굴에는 이때에 비굴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왔습니다. 날도 몹시 차게 되었습니다."
팽의 얼굴에 어리어 돌던 연기가 사라졌다. 두 번째의 연기가 다시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 가운데서 팽은 두 번째의 말을 던졌다.
"이즈음 어떠시오? 방에 불이나 때구 살으시오? 아이구 얼어서 면상이 모두 허옇게 부었군."
지극한 모멸(侮蔑)의 말이었다. 흥선의 얼굴에는 칵 피가 피어올랐다. 숨까지 딱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노염을 눌렀다. 숨까지 딱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노염을 눌렀다. 그리고 그 팽의 말에 달려 늘어졌다.
"대감,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오? 이즈음 곤란하여 참 죽을 지경이외다."
"참 그럴 걸! 내 좀 돌려 드릴까?"
"네, 그러면 고맙겠습니다."
"얼마나? 한 두어 돈이면 될까?"
팽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좌중 문객들에게서 돈을 수렴하려는 눈치였다.
문객들은 눈치가 빨랐다. 팽이 둘러보는 기수에 제각기 얼른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한 문객이 팽의 앞에 돈 두 돈을 웃음과 함께 공손히 바쳤다. 팽은 그 돈을 받았다. 한 닢 두 닢 세어 보았다. 그런 뒤에 웃목에 있는 흥선에게 향하여 스무 닢의 엽전을 뿌려 던졌다.
"과세나 잘 허우."
아랫목에서는 집이 무너져 나갈 듯이 웃는 소리-
흥선은 눈과 코와 귀가 모두 아득하여졌다. 아랫목에서 여러 사람이 크게 웃는 소리가 마치 십리 밖에서 나는 소리같이 작다랗게 들렸다.
흥선은 일어섰다.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여 문을 열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등을 향하여 웃음소리가 또 한번 굉장히 울렸다.
"퉤!"
입을 벌리기 조차 추운 겨울날이었다. 바람이 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극도의 분노와 불쾌 때문에 입의 침이 죽과 같이 걸게 된 흥선은, 연하여 얼어붙은 땅에 침을 뱉으며, 어디인지 자기로도 목적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쌀? 과세? 그런 문제는 이제는 생각도 않았다. 어디 개뼈다귀인지 알지도 못하는 팽 경장에게 수모를 받고, 거기 모여 있는 하향 천인들에게 웃기운 것이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놈들을!"
아아, 마음대로 하자면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그러나 뻔히 자기로서는 어찌하지 못할 일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