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戊戌)년 이월 초이틀이었다. 정월부터는 봄이라 하되 이름이 봄이지, 이월 중순까지도 날이 춥기가 여간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은커녕 낮에도 혹혹 쏘는 바람이 나무등걸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길이며 뜰에 널린 나무 부스러기며 종이조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날 운현궁(雲峴宮) 안의 공기는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무슨 커다란 수심이 있는 듯이, 하인들이 동으로 서으로 분주히 왕래하며, 구석마다 모여서 무엇이 근심스러운 듯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오정이 지나면서부터는 하인들의 수선거리는 것이 더욱 심하였다. 연하여 밖으로 심부름을 나가는 하인들이 있었다. 대궐이며 각 궁이며 권문들에서도 연하여, 혹은 대감 혹은 청지기들이 운현궁으로 왔다.

 

밖의 싸늘한 바람은 더욱 강하여졌다. 펄펄 종이조각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햇빛도 그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였다. 휙휙거리는 바람소리도 꽤 강렬하여, 뜨뜻이 불을 땐 방안에서라도 그 소리만 들어도 추위를 느낄 만하였다.

 

그런 심한 바람 가운데서도 무엇이 분주한지 무엇이 근심스러운지, 하인들은 방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뜰을 수군거리며 왕래하였다.

 

문득-

 

안에서 곡성이 울려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한 마디에서 시작된 그 곡성은 삽시간에 퍼졌다. 내전, 사랑 할 것 없이 그 곡성은 삽시간에 전파되어 온 궁내가 곡성으로 화하였다. 궁 밖으로 모여든 많은 백성들이 궁문 밖에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손을 읍하고 서 있었다. 궁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백성들은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하여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심스러운 소식, 듣기 싫은 소식, 그러나 또한 십중팔구는 반드시 나올 소식을 그들은 겁먹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귀에도 그 궁 안에서 나오는 곡성이 들렸다.

 

"운명하셨다!"

 

누구의 입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다. 모두들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의 깨끗한 옷이 더럽힌다 하지 않고 땅에 꿇어앉았다.

 

"가셨구나!"

 

"대감 가셨구나!"

 

궁 안에서 시작된 통곡성은 밖에서도 화창되었다.

 

이 날이 조선 근대의 괴걸이요, 유사 이래 어떤 제왕이든 감히 잡아보지 못하였던 '절대'적 권리를 손에 잡고 이 팔도 삼백여 주를 호령하며, 밖으로는 불란서, 미국, 청국들을 내리누르고, 안으로는 자기의 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친 흥선 대원왕 이하응(興宣大院王李昰應)이 별세한 날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 있어서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가와 백성, 웃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 사람인 우리의 위인 이하응이 그 일생을 마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