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위!"

 

내일 모레면 섣달 그믐이라는 대목이었다.

 

어떤 길모퉁이에서 한 취객이 큰길로 나왔다.

 

"우-위!"

 

꽤 깊은 밤이었다. 큰길이라야 당시의 장안의 길은 그다지 크지를 못하였다. 게다가 허투루 내버린 물이 모두 얼어서 미끄럽기가 짝이 없었다.

 

"취하는군!"

 

꽤 취한 모양이었다. 걸음걸이가 그야말로 이보 전진 일보 후퇴였다. 한 걸음 나가서는 팔짱을 지르고 몸의 중심을 잡으며 한참씩 서서 있고 하였다.

 

근본은 양반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행색이 초라하기가 짝이 없었다. 해어진 도포, 떨어진 갓, 어느 모로 뜯어보든지 한 표랑객에 지나지 못하였다.

 

개가 한 마리 따라오면서 짖었다. 마치 물고 늘어지려는 듯이 그에게 달려들면서 짖었다.

 

그는 비틀거리던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초라한 옷, 작다란 몸, 어디로 보아도 시원치 못한 이 취객은 자기에게 달려드는 개를 굽어보았다.

 

취객을 짖던 개는 그 취객이 돌아서므로 따라오던 걸음을 멈추고 뒷다리를 버티고 이제라도 취객의 목을 향하여 올라뛸 듯한 자세로 잠시 마주보았다.

 

취객은 개를 돌아보았다. 돌아볼 동안 아직껏 비틀거리던 그의 몸이 멎었다. 그는 자기에게 달려드는 개를 호령을 할지 어를지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이 주저하는 양을 개는 알아보았다. 잠시 뒷다리를 버티고 겨누고 서 있던 개는, 한 소리 지르며 취객의 몸을 향하여 올라 뛰었다.

 

순간이었다. 취객은 몸을 비켰다. 자기가 몸을 비키기 때문에 올라 뛰다가 도로 떨어지는 개에게 향하여 그의 호령이 내렸다.

 

"요 망할 강아지!"

 

놀랍게 우렁찬 음성이었다. 그 초라하고 왜소한 취객의 어디서 그런 우렁찬 소리가 나는가 의심할 만큼 놀라운 소리였다. 대지가 울리었다. 하늘까지 울리는 듯하였다.

 

그 우렁찬 소리에 놀란 것은 그를 물려고 달려들었던 개였다. 개는 이 우렁찬 소리에 위압되어 힐끗 그를 향하여 돌아는 섰지만, 잠시 멍하니 그 취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개는 취객을 쳐다보았다. 취객은 개를 굽어보았다.

 

잠시 개를 굽어보고 있던 취객은 오른편 발을 들었다가 땅을 쿵하니 내리찧었다.

 

"저리 가!"

 

한 마디의 호령이나마 이 취객에게 위압된 개는 즉시 복종하였다. 개는 잠시 더 취객을 쳐다보다가 슬며시 꼬리를 내려 끼고 돌아서 버렸다. 그리고 여음과 같이 두어 마디 더 킹킹 짖어보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망할 놈의 강아지, 남의 술을 다 깨우는군!"

 

취객은 그 개 때문에 취기가 깨는 것을 애석히 여기는 듯이, 길다랗게 숨을 한번 쉰 뒤에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곳에서 발을 뗐다.

 

"우-위! 백설이 만건곤하니..."

 

아까 어느 기생집에서 기생이 부르던 노래를 코로 흥얼거리면서 얼음진 대지를 비틀비틀 어두움 가운데로 사라졌다.

 

-낙척 시대의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이었다.

 

후일에 조선 팔도 삼백 주를 호령하던 대원군, 당시의 한 가난한 종친에 지나지 못하는 흥선군 이하응은 취한 걸음을 비틀비틀 옮겼다. 향하는 곳은 경운동 자기의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