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무관 존중 정책 때문에 무인(武人) 전성시대는 현출되었다.
그러나, 그 폐해가 없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그 전성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엉터리 무인들이 사면에서 생겨났다. 말 못 타는 대장, 활 못 쏘는 활량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문과에 급제하기는 힘들되, 무관에는 웬만만 하면 급제가 되므로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이리로 모여 들었다. 어젯밤의 A읍 아전 향리가, 오늘은 당하관이나마 당당한 무관으로서, 어제의 상관이던 사람과 동석을 하게 되는 예가 여기저기 생겼다. 어제의 B진사 댁 하인이 무과에 급제를 하여 오늘의 어제의 상전을 동무삼는 일이 드문드문 있었다.
엉터리 무 갑, 을, 병, 정, 누구, 누구 몇몇 사람의 선비(혹은 급제)가 모여서 한담들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집의 하인을 부른다.
“여봐라 아무개야? 아무개야―”
몇 번 불러 보아도 대답 소리가 없으면,
“음, 그 놈 과거보러 간 게로군!”
이렇듯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무과 과거로 몰려들고, 몰려든 무리들은 대개는 급제를 하게 되었으므로 무인의 품질이 차차 떨어졌다. 군노, 향리, 종, 머슴 할 것 없이, 신수 좋은 사람은 다 급제를 하기 때문에, 무인들의 품질은 매우 낮게 되었다.
품이 떨어지면 따라서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된다.
―장상이 동석이면…
이리하여 장과 상을 동급으로 쳤지만, 무인들의 품질이 차차 떨어짐을 따라서, 무인은 차차 문인에게 수모를 받게 되었다. 종이품(從二品)인 문참판(文參判)이 도리금 도리옥의 무판서(武判書)나 무판윤(武判尹)을 눈 아래로 깔아보고 인사도 변변히 안 할 뿐더러, 도리어 무장들을 건방지다 말썽을 부리는 일이 흔히 있었다.
무를 존중하자고 시작한 이 법은 차차 무를 멸시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