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하여 두고 부인은 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부인의 동생 민승호는 부인의 내명으로 병들어 누운 일가 아저씨의 병 문안을 겸하여 인사를 하러 갔다.

 

승호는 흥선의 맏아들 재면과 연갑이었다. 역시 영락된 민씨 집안의 한 사람인 승호는 섞이어 같이 놀 동무도 없어서, 만날 흥선의 집에 와서 흥선의 맏아들 재면을 벗하여 놀았다. 촌수로 따지자면 외삼촌과 생질 사이나, 서로 나이가 연갑이고 어려서부터 같이 길러난 이 두 젊은이는, 촌수를 떠나서 벗으로 지냈다.

 

흥선의 맏아들 재면은 사람됨이 직하고 좀 우둔한 편이었다. 거기 반하여 승호는 날카롭기 비수 이상의 인물이었다.

 

좀 우둔한 재면과 날카롭고 민첩한 승호가 같이 노는 모양을 볼 때마다, 흥선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눈 기슭에 타오르고 하였다. 자기 맏아들의 우둔함과 이 승호의 민첩함이 대조되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흥선은 승호의 재질을 사랑하면서도 자기의 맏아들과 같이 놀 때는 흔히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곤 하였다.

 

이렇듯 민첩하고 영리한 승호는 흥선 부인의 내명을 받고 일가 아저씨를 병상에 문안가서 충분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였다. 병상에 외로이 누워서 인생의 고적함을 느끼고 있던 민치록은, 승호의 날카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청년이면 뒤를 맡기고 자기가 죽더라도 결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이 영락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만한 수완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틈이 있거든 내일로 또 와서 이 쓸쓸한 병인을 위로해 주게.”

 

숭호가 저녁에 하직하고 돌아갈 때에, 치록은 병든 몸을 반만큼 일으키고 이렇게 당부하였다. 얽은 소녀도 이 일가 오라비뻘 되는 승호에게, 또 내일도 오라는 듯이 그의 커다란 광채나는 눈을 그의 위에 부었다.

 

이리하여 한 번 두 번 승호가 이 집에 다니는 동안, 치록도 승호의 인물에 반하여, 드디어 흥선 부인을 찾아서 승호를 이 집 양자로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치록의 딸 얽으망이 소녀가 장차 자라서 왕비가 되어,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무서운 정권 쟁탈전을 할 때에 왕비의 부조자요 보호자요 심복이요 고문으로서 흥선대원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민승호는, 이리하여 흥선 부인 민씨의 오라비로서 일가 민 초록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얽은 소녀와 남매의 의를 맺게 된 것이었다. 현재로는 승호는 흥선의 처남―장래는 며느리의 양오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