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 옛날에는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같이 존중하였다. 뿐더러 그 부름에 있어서 '장상'이라 하여, 장을 먼저 놓고 상을 아래 놓아서 무관을 도리어 더 존중하였다.
이씨 조선 대흥(大興)의 명군인 세조(世祖) 때에 이르러서, 나라에서는 더욱 무를 숭상하였다.
이씨 오대 문종(文宗)이 승하하고 그 뒤를 이은 단종(端宗)은 아직 어린 임금이었다. 문종은 당시 재상 황보 인(皇甫仁), 남지(南智), 김 종서(金宗瑞) 및 집현전 학사 성 상문(成三問), 박 팽년(朴彭年), 신 숙주(申叔舟) 등에게 어린 세자를 부탁하였다. 문종 승하한 뒤에 보위에 오른 어린 상감(단종)에게 선왕의 유신들은 선왕의 유탁을 받잡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다.
어린 상감이었다. 그 어린 상감을 보좌하는 신하들은 모두 선왕의 유탁을 받잡은 노신들로서, 상감 한 분뿐만 경지모지하고, 상감의 아래 널려 있는 이 나라의 백성을 돌볼 줄을 몰랐다. 이리하여 자를 가지지 못한 삼천리의 강토는 저 될 대로 의로 벋었다.
문종의 아우요 단종의 삼촌되는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활달하고 명천한 머리의 주인이었다. 그는 조선이라는 강토가 차차 병들어 시들어 가는 모양을 보았다. 이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그 병은 가까운 장래에 불치의 역(不治疫)에까지 이를 것을 보았다. 그래서 노신들에게 제삼 국가를 돌보기를 주의하였다.
그러나 선왕의 유탁으로 상감 보좌의 지위에 있는 노신들은, 불행히 나라를 돌아볼 활달한 눈을 가지지 못하였다. 어린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는 것이 즉 상감께 충성된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선왕께 대한 충성이거니, 이렇게 굳게 믿는 노신들은,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노라고 자기네의 늙은 머리의 지혜를 다 짜내었다.
'무사히!'
'평안히!'
이것이셔서 이 노신들의 유일의 모토였다. 상감 스스로 정치를 잡기까지의 기간을 무사히 평안히 지나는 것―이것이 노신들의 목표였다. 그런지라, 그들은(섣불리 하다가는 문젯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묵살하여 버리고 말았다.
이 나라를 통솔할 분은 너무 어리고, 그 분을 도와서 일을 할 노신들은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하는 동안, 위를 잃은 이 나라는 차차 병집이 커졌다. 그냥 버려 두었다가 다시 수습지 못할 만큼 병은 더하여 갔다.
여기서 수양 대군은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나라를 굳센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굳센 지배자가 필요하였다. 지금의 어린 상감과 무능한 노신들에게 그냥 맡겨 두었다가는, 가까운 장래에 나라가 망하겠다. 그 위태로운 지경에서 나라를 구해 내기 위하여 수양 대군은 스스로 서서 이씨 조선의 제 칠대의 임금이 되었다.
굳센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몸소 역모 멸친의 악명을 쓰고서 세조는, 이 문약(文弱)한 나라를 강한 나라고 만들기 위하여 무(武)에 치중하였다. 방방곡곡에서 무관을 뽑아 올렸다. 구 사람의 지벌의 여하를 막론하고, 힘깨나 쓰는 사람, 활깨나 쏘는 사람은 모두 등용하였다. 무인 전성의 찬란한 황금 시대가 세조의 무관 존중의 제도로 말미암아 한 때 벌어졌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겉이 있으면 반드시 속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