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에 우리라도 좀 그렇지 않게 지냈으면 서로 도울 길이라도 있으련만,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피차 일반으로 영락된 집안, 마음에는 있지만 힘이 자라지를 못합니다그려. 대감께서도 아저씨 병환이 중하시다는 기별을 들으시고 부랴부랴 나를 이 곳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가난하게 지내는 형세에 빈 손으로 올 밖에는 도리도 없고…”

 

“천만에! 일가 한 사람도 돌보다 주지 않는데, 흥선 대감이 이렇듯 조카님을 보내 주신 것만 해도 고맙기 짝이 없소이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중병에 걸렸어도 일가의 돌아봄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치록과, 역시 가난하기 때문에 그 집안은 왕가와 가까운 혈족이면서도 온갖 수모와 멸시만 받고 지내는 흥선 부인과는 서로 위로를 주고 받았다.

 

“내가 여차하는 날에는 이 고아를 돌보아 주시오.”

 

“그 염려는 마세요. 불행한 날이 오면 뒷일을 다 맡아서 보아 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하루 바삐 쾌차하시도록이나 노력을 하세요. 거기 대해서…”

 

흥선 부인은 하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키고 숨을 돌려가지고 다시 계속하였다.

 

“아저씨! 승호(閔升鎬)를 아시지요?”

 

“승호?”

 

“네, 내 오라비 동생.”

 

치록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응, 생각납니다.”

 

“아저씨도 사당을 받들 후사도 아직 없으시니까 더욱 쓸쓸하시겠지요? 그래서 만약 아저씨 마음에만 계시다면, 승호를 이 댁에 양자로 드렸으면 어떨까 하고…”

 

치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생각한 뒤에 다시 눈을 떴다.

 

“조카님 추천이 어련하리까? 그렇지만 이 일은 집안의 중대한 일이니 좀 생각해 보고 작정합시다.”

 

흥선 부인이 오늘 이 병든 치록을 찾은 것은 자기 오라비 승호를 일가 아저씨 민치록의 집에 양자로 들여보낼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흥선 부인은 민치록의 집에 밤까지 있었다. 그리고 간호를 하며 위로를 하며, 이 병든 외로운 일가를 위하여 하루를 보냈다. 밤에 댁으로 돌아오기에 임하여 부인은 다시 한 번 자기의 동생 승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 동생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똑똑하고 영특한 애 외다. 영락된 이 가문에 들어와서 장차 이 가문을 부활시킬 만한 수완이 있는 애외다. 잘 생각해 보셔서 작정하도록 하십시오.”

 

거기 대하여 치록은 사례하였다.

 

“누구 하나 돌보다 주는 사람이 없는 이 치록에게 그렇듯 뒷일까지 생각해 주니 감사하외다. 잘 생각해 봐서 조카님 호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