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에게 작별하고 문을 열려던 흥선은 거기서 드디어 자기의 가장 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독서에 정신이 팔려서 병기는 혹은 자기의 난초 병풍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이렇듯 냉담한가 하여―

 

“대감, 일전에 변변치 않은 물건을 하나 보냈더니 받으셨는지요?”

 

“아 참!”

 

병기는 머리를 기울였다. 이즈음 수일 간 받은 수많은 물건 가운데서, 흥선이 보낸 물건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여 보는 모양이었다.

 

“감사하게 받아서 잘 먹었는데―그…”

 

병기는 병풍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흥선의 얼굴에는 우는 듯한 미소가 나타났다.

 

“가난한 사람은 무사분주라, 휘호도 잘 되지를 않아서 부끄럽습니다.”

 

병기는 비로소 생각난 모양이었다.

 

“참 좋습니다. 석파께 그런 재주가 있는 줄은 참 몰랐소이다. 잘 골방에 싸 두었지요. 우리 집 가보외다.”

 

이 입에 발린 치사에 대하여 흥선은 우는 듯한 얼굴로 대답을 하고 병기와 작별하고 나왔다. 내오던 흥선은 자기를 보내려고 제 방에서 나오는 청지기와 마주치자, 청지기의 방 안에 눈을 던졌다. 동시에 그의 발걸음은 그 곳에 붙은 듯이 딱 멎었다.

 

청지기의 방 발치에는 한 개의 병풍이 서 있었다. 그 병풍이야말로 아까 병기가 한 번은 잘 먹었노라 하고, 그 뒤에는 잘 싸서 골방에 비장하였노라던 병풍―흥선 자기가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서 감을 마련하여 정력을 다하여 흥선이 정성을 다하여 그려서 보낸 이 선물은, 병기의 댁 청지기의 방의 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찬바람이 얼굴을 쏘는 한길에 나서서야 흥선은 비로소 이를 갈았다. 그의 양 뺨으로 흘러 내리는 눈물―그것은 단지 찬바람 때문뿐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감정―그것은 단지 김 병기에게 대한 이 하응의 억분이 아니라, 일개 세도에게 이렇듯 모멸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무력한 종친'의 억울함을 대표한 감정이었다.

 

“으-음!”

 

한 잔의 술로 그의 목을 적시지 못하였으되, 마치 술취한 사람 모양으로 몸의 중심을 잡지를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흥선은 저물어가는 거리를 자기의 집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겨울날 혹혹 쏘는 찬바람이 이 불쌍한 중로(中老)를 놀리는 듯이 그의 옷소매며 자락을 휘날리며, 머리를 푹 가슴에 묻은 채 종친답지 못한 상걸음으로 흥선은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