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펴 놓은 명주―
그 앞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은 흥선이었다.
붓에 먹을 듬뿍이 묻혀 가지고 한참 명주 폭만 내려다 보고 있다가 흥선은 왼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오른손에 잡았던 붓을 명주폭 위에 놀렸다. 손은 뛰놀았다. 위 아래 좌우로, 혹은 천천히 혹은 급속히―흥선의 손에 잡힌 붓이 노는 동안 한 포기의 난초는 명주 위에 그려졌다.
바위, 나무등걸―그 틈으로 벋은 길고 짧은 잎이며 점점이 빛을 자랑하는 몇 송이의 꽃―흥선의 정신을 모은 한 포기의 난초는 명주 위에 나타났다. 거기 낙관을 하고 흥선은 조금 물러앉아서 자기의 휘호한 난초를 굽어보았다. 기교보다도, 화법보다도 오히려 힘으로 찬 난초였다. 알지 못함이 아니며, 자각하지 못함이 아니로되, 패기에 난 그의 손끝은 기교를 무시하고 화법을 무시하고, 때때로 힘있게 길게 벋는 것이었다.
“싱거운 그림이로다!”
입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리지만 그의 입 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 기교를 무시하고 벋어 나간 난초 잎의 힘―만약 당시의 권문 가운데 참으로 난초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면 홍선을 단지 한 주착 없는 부랑자로 보아 넘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법에 벗어나서 길게 벋어 나온 잎이 있었다. 법에 벗어나서 가로 두드러진 나뭇등걸이 있었다. 이 법을 무시한 자기의 의기를 자랑스러운 듯이 잠시 굽어 본 뒤에 그 폭을 고즈너기 걷어 치웠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명주를 자기의 앞에 펴 놓았다.
흥선이 걷어 치운 난초를 청지기 김응원(金應元)이 굽어 보았다. 흥선이 다른 명주폭 앞에서 다른 난초의 구상을 하고 있는 동안, 응원은 흥선이 그려 던진 난초를 굽어 보고 있었다.
이 기괴한 난초 앞에 응원의 마음은 차차 혼란되는 듯하였다. 한 포기를 휘호하면 휘호하느니만큼 주인 대감의 필법은 나날이 법을 무시한다. 나날이 그 기교가 더하고 완벽에까지 도달하여야 할 것이로되, 흥선의 난초는 그와 반대로 나날이 법을 무시한다.
그러나 그 법을 무시한 난초의 위에 흐르고 넘치는 「힘」을 응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법을 무시하였으면 그것은 당연히 「싱거운 난초」일 것이다. 이러한 응원의 상식적 판단을 거슬려서 법을 무시한 흥선 대감의 난초에는 그 힘은 여전히 있을뿐더러 필법을 무시하면 하느니만큼 힘은 더 늘어가는 것이었다.
기교 극치가(技巧極致家)로서의 응원의 상식을 무시하고, 응원의 알지 못할 길을 걸어나아가는 이 난초의 앞에 응원은 혼란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되지 않았다고 튀겨 버리기에는 너무도 힘으로 찬 난초였다. 그렇다고 훌륭한 난초라고 칭찬하기에는 너무도 기교를 무시한 그림이었다.
잠시 굽어보고 있다가 응원은 탄식하였다. 이 탄식성에 명주폭을 내려다보고 있던 흥선의 머리는 응원에게로 돌아왔다.
“싱거운 난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