콱 얼굴에 피가 솟아올랐다. 그것을 흥선은 두어 번의 너털웃음으로 속여 버렸다.

 

“옳은 말이로다. 병기의 말이로다. 상갓집 개지. 옛 터를 잃고 굶주려 다니는 석파나, 주인을 잃고 구석을 찾아 다니는 상갓집 개나 다를 것이 뭐냐? 인제부터는 석파(石坡)라는 호를 버리구 상가구(喪家狗)라는 호를 쓸가 보다.”

 

“그러니 대감, 아예 다시는 가시지 마세요.”

 

“네 듣기에도 싫더냐?”

 

계월이는 그의 커다랗고 광채나는 눈을 굴려서 잠시 흥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런 뒤에 도로 눈을 떨어뜨려 버렸다.

 

흥선은 고즈너기 눈을 감았다.

 

“상갓집 개라!”

 

이 상갓집 개는 내일도 또한 병기의 집을 찾아보자. 수모를 하면 수모를 하느니만큼 더욱 자주 찾아보자. 샅틈으로 기어나간 한 신이 있지 않으냐? 그만 수모를 무엇을 탓할 것인가? 임시―한때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먼 장래를 위하여 온갖 수모를 참고 온갖 고난을 참자. 한때의 울분을 참지 못하여 제로라고 우쭐거리다가 큰 일을 저지르면 어리석은 노릇이다. 그들이 자기를 바보로 여기고 속 없는 놈으로 여기면, 자기는 더욱 더 그들에게 그런 눈치를 보여서 당분간의 안전은 도모하여야겠네.

 

“내일도 또 거기를 가 보아야겠는데…”

 

“꼭 몸소 가 보셔야 될 일이 아니거든 소인께 대리를 맡기세요.”

 

“계집으로는 당하지 못할 일이다.”

 

계월이의 입에서는 약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흥선은 곤한 듯이 몸을 장침에 기대었다. 그리고 팔다리를 기껏 펴면서 기지개를 하였다.

 

“어 졸려!”

 

몇 집 건너 다듬잇소리는 그냥 연하여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