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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손은 여기 있으나 왕의 터를 더럽히는 자 누구냐? 얼근히 취한 흥선은, 적적한 미소를 얼굴에 띄어 가지고 노래를 끝낸 뒤에, 장구채로 자기의 버선코를 두드리고 있는 계월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겨울날 밤은 꽤 깊었다. 저 어디선가―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다듬잇소리가 장단을 맞추어서 고요한 밤 공기를 흔들어 들려 왔다.
“계월아!”
흥선은 기생을 불렀다.
“네!”
장구채로 버선코를 두드리고 있던 계월이는 그 동작을 그냥 계속하면서 머리도 그냥 아래로 숙인 채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저기 어디서 다듬잇소리가 들리지. 들리느냐?”
“네. 아직껏 듣고 있었읍니다.”
“저 다듬이질하는 여인이 과부일까?”
아래로 향하고 있던 계월이의 눈은 구을러서 한 순간 흥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음의 자취가 그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가 어떻게 그걸 압니까? 대감 아세요?”
“암, 알지! 과부의 다듬잇소리로다. 적적한 소리가 아니냐? 짝을 찾는 소리로다. 올 길 없는 이를 찾는 소리로다. 밤을 새워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