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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병기를 가리킴)가 아무리 세쓴다 하기로서니 종실을 그렇듯 멸시해?"
"지당한 말씀이올씨다. 김문 앞에 가면 종친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더구나 흥선 같은 종친 중의 가라지는 말할 것도 없읍니다."
웃음으로 마음을 속인 말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맺히고 또 맺힌 분한은 웃음 가운데도 그의 말투에 다분히 섞여 있었다.
대비는 흥선의 위에 부었던 미소의 얼굴을 조카 성하에게로 돌렸다.
"성하, 너도 가면 그런 멸시를 받느냐?"
"받을 것이 싫어서 도대체 가지도 않습니다."
아직 열 일곱 살의 소년이나 숙성하기 때문에 한 이십살쯤 나 보이는 성하는 귀공자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어 가지고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이 방 안에는 수십년내로 처음 활기 띈 웃음 소리가 연하게 났다. 구중(九重) 깊은 속에서 삼십여 년을 외로이 보낸 조대비의 낯에도 활기와 화기가 적이 떠 돌았다.
"대감은 투전이라는 것을 꽤 잘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 토막의 이야기가 끝이 난 뒤에 대비가 미소를 띄고 흥선에게 물은 말이 이것이었다.
이 말에는 흥선도 고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할 것이야 뭐이 있겠습니까? 심심 소일로 장난할 따름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