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하옥(荷屋) 김좌근은 자기의 생신연을 자축하기 위하여, 각 종친이며 권문들을 자기의 집에 초대하였다. 흥선도 종친의 한 사람으로서 그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초대를 안 받았을지라도 남의 집 생일에는 잊지 않고 찾아 가는 흥선인지라, 그 잔치에 참예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철종 왕비의 아저씨요, 세도 김병기(金炳冀)의 양아버지이며, 벼슬이 수상(首相)에 있는 하옥의 생일날이라, 명문 거족들이 모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뜰에는 이 권문들이 타고 온 평교자며 남녀며 가마 초헌 등으로 송곳 세울 틈조차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잔치의 자리에는 이 나라에서도 내로라는 뽐내는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를 깨어진 갓에 해진 옷으로 꾸민 흥선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비단 옷으로 모두 꾸민 고관들 틈에 이 변변치 않은 행색을 한 사람이 끼어 있는지라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만약 그것이 흥선이 아니요 다른 사람일 것 같으면 스스로 창피하여 몸을 숨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기탄하지 않는 흥선은 태연히 그 가운데서도 사람의 눈에 가장 띄기 쉬운 문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흥선의 이 모양을 보고도 다만 본체 만체하여 버렸다. 그러나 주인 하옥이 보기에 꼴이 되지를 않았다. 더구나 옷은 할 수가 없다 할지라도 참대 갓끈이 더욱 눈에 띄었다.

 

흥선의 지위로 말하더라도(만약 흥선에게 재산만 있으면) 격식상 당연히 호박(琥珀) 갓끈을 하여야 할 것이었다. 관자는 도리옥(環玉)을 붙여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 도리옥 도리금 관자에 호박 금패의 갓끈을 늘인 빈객들 틈에, 송진 관자에 참대 끈을 늘이고 태연히 앉은 흥선의 모양이 꼴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서 귓속말로 자기의 아들 병기에게 가서 호박 끈을 하나 빌어다가 흥선에게 몰래 주라고 명하였다.

 

작은 사랑에서 제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 대신의 생신연을 즐기던 병기는 하인에게서 이 전갈을 듣고,

 

"석파―(石坡―흥선의 호)더러 직접 나한테 와서 빌어달래라고 그래라."

 

하여 하인을 그냥 돌려 보냈다. 흥선 따위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병기는 제 갓끈이 없어 남의 것을 빌어서 체면을 보지(保持)하려는 흥선의 심사가 미워서 망신을 주고자 함이었다. 술이 얼마만큼 취한 병기는 그 독특의 잔혹성까지 발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