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께 뵙는 것만도 예외인데, 주찬의 하사까지 받는다 하는 것은 과연 예외였다. 가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군가가 탈 만한 상당한 남여도 갖고 있지 못할 흥선은 자기에게 얼마만큼 호의를 보여 주는 영초의 사인 남여를 얻어다가 타고 대비께 간 것이었다. 대비의 조카 조성하도 배행을 하였다.

 

대비는 이 이단자(異端者)를 흥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찍이 궁중에서도 들린 흥선의 소문으로서, 술 잘 먹고 투전이라 하는 잡기를 잘 하고, 싸움도 꽤 잘 하며, 거리거리는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서인 상놈들과 어깨를 겨누고, 막걸리라는 하등 술을 혀를 채면서 먹는다는 이 이단자는 대비에게 있어서는 흥미 있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단자에게 대하여 조카 조성하의 소개가 또한 굉장하였다.

 

"한 사람뿐이올씨다. 포도가 크옵니다. 종실에 사람이 많지만, 호방하고 뜻이 큰 이는 흥선군 한 분뿐이옵니다. 지금 구름을 못 얻었지만, 구름만 얻는 날엔 능히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옵니다. 그 포부를 펼 데가 없어서 술로써 생애는 모호히 하고 있읍니다."

 

조성하의 소개는 대략 이러하였다.

 

궁중에서 일찍부터 들리던 그 소문이 옳은 말인지, 조카 성하의 말이 옳은 말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미식미의(美食美衣)에는 부족이 없는 대비다. 그러나 일찍부터 외로운 몸이 된 그에게는 인생의 적적함이 늘 마음 속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좀 색채 다른 것을 보아서 임시로나마 이 너무도 단조로운 궁중 생활의 권태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충동이 늘 있던 것이다.

 

김대왕대비 재세(在世)시에는 며느리의 구실을 하느라고 한 때도 머리 들어 본 때가 없었다. 지금은 이 종실의 으뜸 어른의 자리에 오른 대비는, 더구나 초로(初老)의 흠 없는 몸이라, 이 색채 다른 이단자를 불러서 하루의 소일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특별히 예의라는 것을 엄격히 지키고자 하지 않는 흥선의 태도는 대비에게는 더욱 재미스러웠다.

 

"재재작년 영의정 댁 생신인 이래 이런 만반 진찬은 처음이올씨다."

 

나주반(羅州盤)을 움켜 안고 일변 먹으며, 일변 마시며, 일변 이야기하며 하는 흥선은, 이런 말을 하며 하하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