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끈은 무슨 갓끈? 그래 호박 갓끈이 아니면 술 자시지 말랍디까? 하하하하!"

 

술잔을 내어민 채 병기는 큰 소리로 웃었다. 저기 모여 있던 젊은 공자들도 일제히 웃으며 흥선을 쳐다보았다.

 

흥선은 이 조소에 칵 눈이 어두워졌다. 그 흥선의 귀에 병기의 계속되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의 갓끈을 빌어서 체면이나 차리면 뭘 하오? 실속으로 술을 먹어야지. 자, 술은 내 드릴 테니 걱정마시오. 잔으로 시원치 않으면 바리깨로라도 요강 뚜껑으로라도 마음대로 자시오."

 

이 너무도 과한 조소에 거기 있던 기생이 무안하여 잔에 술을 하나 부어 가지고 흥선에게로 달려 왔다.

 

"대감 드세요. 이―술 한―잔―잡―으…"

 

그러나 흥선은 그 잔을 받지 않았다. 얼굴에 쇠가죽을 대고 창피한 일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다니는 흥선이로되, 이 병기의 독설에는 자기의 정신을 거의 잃도록 흥분하였다.

 

일부러 자기가 빌러 온 것은 아니었다. 자기는 아무런 갓끈이든 탓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병기의 아버지 하옥이 그런 호의를 쓰기에 고맙다 하고 온 것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거기 대하여 병기의 응대는 너무나 그 돗수를 넘친 것이었다.

 

흥선은 그 만반 진찬을 먹지를 않았다. 그리고 소매를 떨치고 하옥의 집을 뒤로 하였다.

 

이전에 겪은 이 분한 한 토막의 이야기를 흥선은 대비의 앞에 피력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듯이 허허 웃었다.

 

대비도 흥선의 이야기에 소리를 높여서 웃었다. 이 폐의파립의 공자가 금라로 꾸민 재상들 틈에 섞여서 같이 담소를 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볼 때, 오십 년 생애의 그 삼십여 년을 궁중에서 보낸 대비는 일종의 통쾌미조차 느낀 것이었다.

 

그런 뒤에 대비는 탄식하였다.

 

"김문(金門)이 너무도 승(勝)해. 과히 승해."

 

김문의 과한 방자에 대하여 호소할 곳이 없던 대비가, 거기 대한 원한을 입 밖에 내어 보는 그 첫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