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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옥은 하릴없이 몸소 흥선에게 가까이 가서 흥선의 귀에 입을 대고,
"대감, 내 아들의 방에 좀 가 보시오. 대감 갓끈이 너무 낡아서 병기한테 호박 갓끈을 잠깐 빌려 드리라고 했으니 가시면 드리리다. 가서 갈아 대시오."
하였다.
흥선으로 보자면 갓끈이 참대가 아니라 종이 노끈이라도 기탄할 바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 대감의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고, 더구나 주인의 체면도 보아 주어야겠다 싶어, 병기가 있는 작은 사랑으로 찾아 갔다.
흥선은 병기를 찾아서 작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병기는 자기의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다가, 흥선이 들어오는 것을 힐끗 한 눈으로 보았다. 그런 뒤에는 다시는 본체 만체 자기의 친구들과 술을 주고 받고 하였다.
흥선은 문턱을 넘어선 채 먹먹하여 버렸다. 자기가 들어오면 당연히 준비해 두었던 호박 갓끈을 내어 주려니하고 왔던 흥선인지라, 그만 거기 엉거주춤하여 버렸다.
자기의 친구들과 지껄여대면서 술을 먹고 있던 병기에게 향하여, 갑자기 무엇이라고 하여야 할지 말문이 막힌 흥선은, 좀 그 자리에 웅크리고 서 있다가 마침 술을 가지러 나가려는 기생을 붙들어서 갓끈의 사건을 병기에게 전하게 하였다. 병기는 기생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힐끗 흥선을 쳐다보았다.
"호, 흥선 대감 오셨군! 자 약주나 한 잔 받으시오."
병기는 아랫목에 앉은 채 술잔을 흥선의 방향으로 내어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