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은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조선을 등지고 떠났다. 그렇건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동혁에게서는 전보도 편지도 오지 않았다. 차디찬 다다미 방에서 얇다란 조선 이불을 덮고 자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겨우 요기만 하며 지내는 영신에게는, 기숙사 생활이 여간 신산(辛酸)한 것이 아니었다.


동무들도 친절하기는 하나 속마음을 주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어울리지 않는 일본 옷을 입은 것처럼, 동급생들하고도 얼리지를 않았다. 학교도 예상하였던 것보다는 취미에 맞는 것이 없고, 농촌에 관한 것은 거의 한 과정도 없어 '이걸 배우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후회가 났다. 정양할 겸 온 것이라지만, 수토(水土)가 달라 몸은 점점 쇠약해질 뿐…


학교에 가서도 층층대를 오르내리려면, 다리가 무겁고 무릎이 시큰시큰 하여서 매우 괴로왔다. 부었다 내렸다 하는 다리를 눌러 보면, 손가락 자국이 날 만큼이나 살이 무르다. 같은 방에 있는 학생에게 물어 보니,


“암만해도 각기병 같은데 얼른 병원에 가 진찰을 해봐요.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하면 큰일난답니다.”


하면서도 전염병이 아닌데도 같이 있기를 꺼리는 눈치까지 보였다.


“아이고! 또 병원엘 가야 하나!”


말만 들어도 병원 냄새가 코에 맡히는 듯 지긋지긋하였다. 가볼래야 진찰료와 약값을 낼 돈도 없지만…


'이런 구차스런 유학이 어디 있담'


영신은 만사가 도시 귀찮았다. 공부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고향에 가 눕고만 싶었다.

'오라는 곳마다 방황하여도

일간두옥 내 집만한 곳이 없고나!'

소녀 시절에 부르던 '홈 스위트 홈'을 그나마 남몰래 불러보려면, 떠나올 때에도 찾아가 뵙지 못하고 온 홀어머니 생각에 저도 모르게 베개를 적시는 밤이 계속되었다.

'내가 천하에 불효녀지,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그 불쌍한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지내지를 못하니…'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밤이면 밤, 꿈이면 꿈마다 보이는 것은 청석골이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 아니라, 저를 낳아 길러 준 어머니가 계신 고향보다도 청석골이 그리웠다. 어느 것이나 정다운 추억이 아닌 것이 없다.

“오오 청석골, 그리운 내 고향이여!”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영신의 입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영탄사연만, 그대로 내뽑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될 듯싶다.

정을 가득 담은 원재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뒷일을 맡은 청년들의 자세한 보고를 접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을 때만큼이나 가슴이 설레었다. 그중에서도 제가 기역, 니은부터 가르치고, 가장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가 공책에다가 연필로 꼭꼭 박아서,

'전 선생님 보고 싶어요. 오늘도 선생님 편지 기다리다간 체부가 그대로 가서, 옥례하고 필순이하고 자꾸만 울었에요. 우리들은 선생님이 이상스런 옷을 입고 박으신 사진 보고 깜짝 놀랐지요. 아이 숭해, 인전 그런 옷 입지 마세요. 그래도 우리를 보고 웃으시는걸 보니깐, 어떻게 반가운지 눈물이 나겠지요. 아이 그런데 선생님 난 몰라요. 그걸 서로 뺐다가 찢었으니 어쩌면 좋아요? 옥례가 찢었에요. 그래서 반씩 노나 가졌는데, 또 한 장만 보내주세요. 네 네? 아무도 안 뵈고 저만 두고 보께요.'

글자도 몇자 틀리지 않고 정성을 들여 반듯반듯이 쓴 글씨를 볼 때, 영신은 어찌나 귀엽고 반가운지, 그 편지에 수없이 입을 맞추었다.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홑고쟁이를 입었던 금분이를 저의 체온으로 품어 주듯 그 편지를 허리춤에다 넣고 틈만 있으면 꺼내 보았다.

어떤 날은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의 편지가 소포처럼 뭉텅이로 와서 부족을 물었다. 편지마다 선생님 보고 싶다는 말이요, 사연마다 어서 오라는 부탁이다. 어떤 아이의 편지에는, 누런 종이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 글자가 번진 흔적처럼 보여서,

“오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나를 이다지도 보고 싶어하겠느냐. 이다지도 작은 가슴을 죄며, 고 어여쁜 눈에 눈물을 짜내며 이 나를 기다려 줄 사람이 누구냐. 너희밖에 없다. 온 세계를 헤매 다녀도 우리 고향밖에 없다. 청석골밖에 없다!”

하고 그 편지 뭉텅이를 어린애처럼 붙안고 잤다. 그는 홈 시크(思鄕病)란 병까지 침노를 받은 것이다.

한편으로 동혁의 소식이 끊어져 가뜩이나 심약해진 영신의 애를 태웠다. 한곡리로 몇 번이나 편지를 했지만 답장이 없다가 하루는 뜻밖에 정득의 이름으로 편지가 왔다. 동혁은 도청 소재지의 검사국으로 넘어 갔고, 동화는 만주(滿洲)에 가 있는 듯하다는 것과, 수일 전에야 동혁이와 한 방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검사국까지 넘어오기는 했으나, 면소(免訴)가 되어 불원간 나갈 자신이 없으니, 영신씨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고, 아무 염려 말고 건강에만 주의하라고 부탁을 하고 갔으니 안심하라'는 사연이었다.

영신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그날 밤은 일찍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곁에 누운 학생이 늦도록 촛불을 켜놓고 복습을 하느라고, 부스럭거리고 드나들고 하여서 잠은 들었다가도 몇 번이나 깨었다.

청석골의 환경이 머리 속에 환하게 나타나고, 학원과 아이들의 얼굴이 핀트가 어그러진 활동사진처럼 어른어른하다가는, 한곡리의 달밤, 그 바닷가에서 동혁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던 때의 정경, 병원에서 그에게 안겨 지극스러운 간호를 받던 생각이 두서없이 왕래해서, 그 환영을 지워 버리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무진 애를 쓰다가 근근근 쑤시는 다리를 제 손으로 주무르며 간신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