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청석골서 정이든 여러 사람이 마중을 나오고 그 귀여운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하고 달려들 생각을 하니 어찌나 기쁜지 몰랐다.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서, '비행기라도 타고, 어서 갔으면' 하고 기차를 탄 뒤에도 마음이 여간 조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동혁 씨가 나와서, 나를 번쩍 안고 차에서 내려놓아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것이 공상이 되지 말기를 빌었다.
자동차 정류장에는 청석골의 주민들이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마중을 나왔다.
“아이고, 웬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 섰나? 장날 같으이.”
하고 영신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의 전보를 보고, 그렇게 많이들 나왔을 줄은 몰랐다. 멀리 억덕 위에 우뚝 솟은 학원집의 유리창이 석양을 눈이 부시게 반사하는 것을 볼 때, 영신은,
“오, 오, 저 집!”
하고 저절로 부르짖어졌다.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지은 그 집이 맨 먼저 주인을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정거를 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어느 틈에 보았는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손을 내저으면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앞을 다투어 쫓아 온다.
“금분아!”
“옥례야!”
영신도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며 외치듯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이가 내리기가 무섭게 백여 명이나 되는 남녀 학생은 벌떼처럼 선생의 전후 좌우로 달려들었다.
“채 선생님 오셨다!”
“우리 선생님 오셨다!”
계집애들은 동요를 부르듯 하면서 영신의 손에 소매에, 치맛자락에 매어달려서 까치처럼 깡충깡충 뛴다. 영신은 눈물이 글썽글썽해 가지고, 그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이들을 한 아름씩 끌어안고,
“잘들 있었니? 선생님 보구팠지?”
하고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청년들과 낫살이나 먹은 남자들은,
“안녕히 다녀 오셨습니까?”
하고 모자나 수건을 벗고 허리를 굽히는데, 원재 어머니는 영신의 두 손을 쥐고,
“병이 더치셨다는구료?”
하고는 목이 메어서 말을 눈물로 삼킨다.
부인친목계의 회원도 대여섯 사람이나 나왔는데 모두 '떠날 때보다도 더 못해 왔구나' 하는 듯이, 무한이 가엾어 하는 표정으로 영신의 수척한 얼굴과 다리를 절름거리는 모양을 바라보며 따라온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의 어깨를 짚고,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맨 먼저 학원으로 올라갔다.
“바로 집으로 갑시다.”
하는 것을,
“우리 집부터 가 봐야지요.”
하고 간신히 올라가서는 안팎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 동안에 집은 매우 찌들어 보였다. 걸상과 책상이 정돈이 되지 못하고, 벽에는 여기저기 낙서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제가 연설을 하다가 쓰러진 강단 맞은 편 쪽에 정성을 다해서 소나무와 학을 수놓아 걸은 수틀이 삐딱하게 넘어간 채, 먼지가 켜켜로 앉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걸 어쩌면 이대로 내버려들 뒀을까?' 하고 영신은 원재더러 발판을 가져오래서 손수 바로 잡아 놓고, 먼지를 털고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아이들은 저희들의 선생님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열 겹 스무 겹 에워싸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금분이는 반가움에 겨워 자꾸만 저고리 고름으로 눈두덩을 비비며 홀짝홀짝 울면서 영신의 손을 땀이 나도록 꼭 쥐고 따라다닌다.
영신이가 쓰던 방은 전처럼 깨끗이 치워놓았다.
“아아, 여기가 내 안식처다!”
하고 영신은 불을 뜨뜻이 때어 놓은 아랫목에 가 쓰러졌다. 다다미방에서 다리도 못 뻗고 자던 것이 아득한 옛날인 듯, 여러 날 기차와 기선에서 시달린 피곤이 함께 닥쳐와서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방에까지 따라 들어와서 빽빽하게 콩나물을 길러 놓은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난 천애(天涯)의 고아들이 뜻밖에 자애 깊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영신의 곁을 떠나려고 들지 않는다. 영신은 하관(下關)서 사 가지고 온 바나나 뭉치를 끌러달라고 해서, 세 토막 네 토막에 잘라, 아이들의 입맛만 다시게 하였다. 기차삯만 빠듯이 와서, 벤또도 변변히 사먹지 못하고 오면서도 빈 손을 내밀 수가 없어 주머니를 털어서 사 가지고 온 것이었다.
원재 어머니는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며,
“너희들도 이젠 고만 가서 저녁들 먹어라.”
하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통배추 김치에 된장 찌개를 보니 영신은 눈이 번해져서 저도 모르는 겨를에 일어나 앉았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서, 기숙사 식당에 하고 한날 놓이는 미소시루와 다꾸왕 쪽을 생각하였다. 영신은 이야기도 못하고, 위장에 밴 고향의 음식을 걸터듬해서 먹었다.
영신은 마음을 턱 놓고, 뜨뜻한 방에서 오래간만에 잠을 잘 자서 이튿날은 정신이 매우 쇄락하였다. 다리가 부은 것도 조금 내려서 걷기가 한결 나은 것 같아 예배당으로 올라가서는 감사한 기도를 올리고 내려왔다. 동시에, 동혁이가 하루바삐 무사하게 나오기를 축원하고 내려오는 길로 한곡리 농우회원들에게,
'나는 그 동안 귀국해서 무사히 있으니, 동혁 씨의 소식을 아는 대로 즉시 전해 달라'
고 편지를 써 부쳤다. 당자는 동혁의 생각을 잊으려고 애를 쓰건만, 원재 어머니가,
“아이고 그이가 얼마나 고생을 할까요? 그렇게도 지궁스레 간호를 해주더니, 내가 가끔 생각이 날 적에야.”
하고 자꾸만 일깨워서,
“나오는 날 나오겠죠. 인전 그이 말을랑 우리 하지 맙시다요.”
하고 동혁의 말은 비치지도 못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