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한 사나흘 동안 쉰 뒤에 영신은 전과 같이 학원의 일을 보고 주학은 물론 야학까지도 겸해서 교편을 잡았다. 그 동안 청년들에게만 맡기고 내버려두어서, 저희들은 힘껏 일을 보느라고 하건만 지도자를 잃은 그들은 제멋대로 가르쳐서 조금도 통일이 되지 않는다. 생기는 것이 없는 일인데다가, 그도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싫증이 나고 고만 귀찮은 생각도 들어 그럭저럭 시간만 채우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청년이 없지 않았다.
'이래선 안되겠다. 내가 또 본보기를 보여야만 다들 따라온다' 하고 최대한도의 용기를 내었다. 제가 입원한 동안에 기부금이 다 걷혀서 학원을 지은 빚만은 요행으로 다 갚았으나 집만 엄부렁하게 컸지, 이제는 그 집을 유지해 나아갈 경비가 없다. 등뒤에 무슨 재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월사금 한푼 안 받으니, 수입은 없고 지출뿐이다. 심지어 분필이 떨어지고, 큰 남포를 서너 개나 켜는 석유를 대지 못해서 쩔쩔매는 형편이라, 신병이 있다고 가만히 보고 앉았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오래 섰으면 다리가 무겁고, 신경이 마비가 되어 오금이 들러붙는 것처럼 떼어놓을 수가 없는데 학원과 예배당으로 오르내리는 데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서 그 자리에 넘어질 것 같건만,
'난 기왕 청석골의 백골이 되려고 결심한 사람이다. 다시 쓰러지는 날, 그 시각까지는 손끝 맺고 앉았을 수가 없다.”
하고 학부형들이나 원재 모자가 지성으로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난 우리 청석골을 위해서 생긴 사람이야요. 내가 타고난 의무를 다하다가 죽으면 고만이지요. 되려 내 몸에 넘치는 기쁨으로 알고 있어요.”
하고 눈시울에 잔주름살을 잡아가며 웃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동혁이가 죄 없이 감옥에서 저보다 몇 곱절이나 되는 고생을 하는 생각을 할 때,
“오냐, 내 맥박이 그칠 때까지!”
하고 오직 일을 하는 것이, 차입 하나 못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정신적으로나마 어떠한 선물을 보내주는 것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약은 얻어먹을 생각도 못하고, 또 각기증에는 특효약도 없다지만, 의사의 권고대로 현미에다가 보리를 많이 섞어 먹어도, 병이 나아가기는커녕 증세가 점점 더 악화가 되어 갈 뿐이다. 다리가 붓고 무릎이 쑤시기는 했어도 그다지 아픈 줄을 몰랐더니 줄곧 그 다리를 놀려 두지를 않아서 그런지 띵띵해진 종아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펄쩍 뛰도록 아프다. 밤에는 고통이 더 심해서 뜬눈으로 밝히는 날까지 있으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하루도 빼어놓지 않고 교단에 서기를 거의 한 달 동안이나 하였다.
그 동안 하나 둘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영신이가 돌아온 뒤에 신입생이 열씩 스물씩 부쩍부쩍 늘었다. 때마침 농한기라, 어른들은 물론 오십도 넘는 노파가 손녀의 손을 잡고 와서는,
“죽기 전에 글눈이나 떠보게 해 주시유.”
하고 진물진물한 눈으로 칠판을 쳐다보고,
“가·갸·거·겨·”
하고 따라 읽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감격에 가슴이 벅찼다.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동네 사람이 거의 구할 가량이나 문맹이던 것이 이제는 글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칠할 가량이나 된다. 오십 이상 늙은이와 젖먹이를 빼어 놓으면, 거의 다 눈을 떼어준 셈이다. 더구나 부인친목계를 중심으로 부인네들이 깬 것과 생활이 향상된 것은 놀라울 만하지 않으냐'
하고 자못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수록 사업에 대한 애착심은 고향을 떠나 보기 전보다 몇 곱이나 더해져서 육신의 고통을 참아나가는 힘을 얻었다. 한두 가지도 아닌 병마에 사로잡혀, 거의 위중한 상태에 빠진 영신으로서는 사실 기적과 같은 힘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은 천만 뜻밖에 동혁의 편지가 왔다. 동경역에서 못 받아 보려니 하면서도, ○○형무소로 부친 엽서를 본 답장인 듯 모필로 쓴 필적이며 계호주임(戒護主任)의 도장이 찍혀 나온 것이 분명히 동혁에게서 온 것이다. 영신은 손보다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진정하고, 바늘 구멍처럼 뚫어 놓은 봉함 엽서의 가장자리를 쭉 뜯었다.
'이제야 취조가 일단락이 져서, 편지를 할 수 있게 되었소이다. 청석골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엽서도 어제야 받고, 그 병이 재발이나 되지 않았는지 매우 놀랐습니다. 긴 말을 쓸 수 없으나, 오직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 주십시요. 또다시 억지를 쓰고 일을 하실 것만이 염려외다.
나는 아직 수신(修身)대학 본과에는 입학할 자격을 얻지 못하였으나, 예과에서도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수양하고 반성하고 싶은 자는 다 이리 오라'하고 외치고 싶소이다.
몸은 여전한데 하루 세 끼 조막덩이만한 콩밥이, 겨우 간에 기별만해서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은 것만이 불평이외다. 나는 좀더 묵고 싶지만 아마 여관 주인이 불원간 내쫓을 것 같은데, 나가는 대로 먼저 그리로 가겠으니, 부디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영신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먹이 입술에 묻도록 편지에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는,
“혈색 좋은 얼굴! 혈색 좋은 얼굴!”
하고 혼잣말을 하며 조그만 손거울을 꺼내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는 그 거울을 동댕이쳤다. 거울은 문지방에 가 부딪치며 두 쪽에 짝 갈라졌다.
영신은 가슴이 선뜩해서 '아이, 왜 저걸 내던졌던가' 하고 금방 후회를 하고 거울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탄식을 한들, 깨어진 유리쪽을 두 번 다시 붙여 보는 재주는 없었다. 학원 마당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한 떼가 몰려와서,
“선생님, 어서 가세요, 어서요, 어서.”
하고 영신을 일으켜 세우고 잡아당기며 떠다밀며 학원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웬일인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그는 억지로 꺼둘려가서 새 과정을 가르치지 않고 복습을 시켰다. 계집애들은 채 선생이 아니면 배우지를 않기 때문에 두 반씩이나 맡아 가르칠 수밖에 없어, 왔다 갔다 하며 복습을 시키는데는 더구나 힘에 부쳤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 지독한 고생을 달게 받는 이도 있는데…'하고 기를 쓰며 눕지를 않으려고 앙버티었다.
'그이가 나오면 얼굴, 이 몸뚱이를 어떻게 보이나'하고 이번에는 교실 유리창에 수척한 자태를 비치어 보다가, '오지 말았으면, 차라리 영영 만나지나 말았으면…'하고 제 꼴이 제 눈으로도 보기가 싫어, 발꿈치를 돌리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렇지만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진 못하더라도 앓아 누운 꼴이나 보여 주지 말리라' 하고 아침에 종소리만 들리면 입술을 깨물고 문고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는 학부형회에 참여를 하고 늦도록 학원의 유지 방침을 의논하다가 별안간 심장의 고동이 뚝 그치는 것 같아서 원재에게 업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턱 쓰러지며 고만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