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에 영신은 반쯤 눈을 뜨더니, 가까스로 손에 힘을 주어, 원재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긴다.
“워 원재를 좀…”
원재는 눈을 비비며 황급히 들어왔다. 안방에 모였던 다른 청년들도 원재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남편의 임종을 한 경험이 있는 원재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숯불을 피워 놓고 약을 달이다가, 이 구석 저 구석에 쓰러진 부인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깨워 가지고 와서 방안은 그들로 가득 찼다.
청년들은 영신의 머리맡에 둘러앉았다. 여러 사람은 숨소리를 죽여 방안은 무덤 속같이 고요한데, 영신은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다가 원재의 손을 잡고 나머지 힘을 다 주며,
“원재, 내가 가더래두…우리 학원은 계속해요! 응, 청년들끼리…”
하고 여러 청년의 수심이 가득 찬 얼굴을 둘러보며 마지막 부탁을 한다.
원재는 무릎을 꿇고 다가앉아, 두 손으로 식어가는 영신의 손을 힘껏 쥐며,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네 선생님!”
하고, 목이 메었다가,
“염려 마세요! 저희들이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학원을 붙잡으께요. 죽는 날까지 해 나갈께요!”
하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여러 해 동안이나 영신에게 지성껏 지도를 받아 온 청년들의 눈에서는 굵다란 눈물 방울이 뚜욱뚜욱 떨어진다.
“울지들 말어. 못난 사람이나 울지.”
그 목소리는 간신히 알아들을 만해도, 아우를 달래는 친누이의 말처럼 정답고 은근하다. 영신은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는 부인네들을 보고,
“청석골 여러 형젤 두고…내가 어떻게 가우?”
하다가 그저 잠이 깊이 든 금분이를 가까이 안아다 누이게 한 뒤에, 발발 떨리는 손끝으로 앞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것들을 어떡허나?”
하고 가늘게 흐느낀다.
“걱정마슈. 얘 하난 내가 맡아 기를께.”
울음 반죽인 원재 어머니의 말에 영신은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다가 다시금 깜박하고 정신을 잃었다. 호흡은 점점 가빠가는데, 맥을 짚어 보니 뚝 뚝하고 절맥이 된다.
그렇건만 영신은,
“끄응!”
하고 안간힘을 쓰며, 턱밑까지 닥쳐온 죽음을 한걸음 물리쳤다.
“나 나…”
하고 혀끝을 굴리지 못하다가,
“학원 집이 뵈는 데다…무 묻어…”
하는데, 이제는 말이 입 밖을 새지 못한다. 입에다 귀를 대고 듣던 원재 어머니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신은 또다시 기함을 했다가, 그래도 무엇이 미진한 듯이 헛손질을 하는데, 벽에 걸린 손풍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원재는 냉큼 일어나 그것을 떼어 들었다. 그는 일상 영신의 것을 장난해 보아서 곧잘 뜯을 줄 안다.
“찬미 하나 할까요?”
“…”
영신은 고개를 뵈는 듯 마는 듯 끄덕여 보인다. 원재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것으로 멀리 뵈네
있을 곳 예비하신 구주
우리들을 기다리시네'
를 고요히 고요히 뜯기 시작하는데, 영신은 그것이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흔든다. 원재가 손을 멈추고,
“그럼 무슨 곡조를 할까요?”
하고 귀를 기울이니까, 영신은,
“사 사 삼천리…”
하고 자유를 잃은 입을 마지막으로 힘껏 움직인다.
손풍금 소리와 함께 청년들은 입술로 눈물을 빨다가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찬송가 전문 약(讚頌歌全文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