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골의 산천이 가까와올 때까지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억지로 부인하려고 저의 마음과 다투었다. 기적이 나타나기를 빌고 바라는, 미신 비슷한 생각에 잠겨보기도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는 정류장에 와 닿았다. 영신이가 손수건을 흔들며 달려오는 환영이 눈앞을 어른거리다가 원재가 홀로 나와 서서 저를 보고는 머리를 폭 수그리는 현실로 변할 때 혹시나 하고 기적을 바라던 동혁을 공상조차 조각조각 깨어졌다.
병원에서 같이 영신을 간호할 때에 정이 든 원재는 동혁에게 손을 잡히자, 말 대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원재의 뒤를 따라 묵묵히 논틀 밭틀을 걸었다. 이제 와서 동혁은 다만 한 가지 소원은, 온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길이길이 잠이든, 그 얼굴이나마 한 번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입관은 했나?”
비로소 동혁의 말문이 열렸다.
“벌써 했어요.”
이 한 마디는 그의 마지막 소망까지 끊어 버렸다. 동혁은 커다란 조약돌을 발길로 탁 걷어차고, 하늘을 원망스러이 흘겨보다가 다시 걷는다.
원재는 그제야 띄엄띄엄 울음을 섞어가며 그 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한다. 영신이가 운명하기 전에 저의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하던 사람에게 전해 달라던 유언과, 감옥에서 나온 편지를 가슴 속에 품고 갔다는 것이며, 벌써 해가 기울어가니까, 집에서는 발인(發靷)을 해서 학원에서 영결식을 할 터이니, 그리고 바로 가자고 한다. 동혁은,
“음, 음”
하고 조금씩 고개를 끄덕여 보이다가, 그 유언을 다시 원재의 입에서 들을 때는, 발을 멈추고 우뚝 서서,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눈을 딱 감고 있었다.
동혁은 학원 마당에 허옇게 모여선 조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관 앞에 세워 놓은,
'우리의 天使 蔡永信之柩'
라고, 흰 글씨로 쓴 붉은 명정 앞까지 와서, 모자를 벗었다. 여러 달 동안 면도도 못해서, 수염과 구레나룻이 시꺼멓게 났고 그 검붉던 얼굴이 누루퉁퉁하게 부어서, 문간만 내다보고 있던 원재 어머니는 동혁을 얼른 알아보지 못하다가,
“아이고 이제 오세요?”
하고 나와 반긴다. 그는 입술을 떨면서,
“채 선생 저기 계셔요!”
하고 교단 위에 검정 보를 씌워 가로놓은, 영구(靈柩)를 가리킨다. 영결식도 끝이 나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느라고 남녀 교인들과 아이들은 관 앞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판이었다.
동혁은 눈 한 번 꿈벅이지 않고, 관을 바라보며 대여섯 간 통이나 걸어온다. 관머리까지 와서는 꺼먼 장방형(長方形)의 나무궤짝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는 그의 두 눈! 얼굴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킨 듯이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어깨가 떨리고 이어서 온 몸이 와들와들 떨리더니, 그 눈에서 참고 깨물었던 눈물이 터져 내린다. 무쇠를 녹이는 듯한 뜨거운 눈물이 구곡간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것이다.
“여, 여, 영신씨!”
그는, 무릎을 금시 꺾어진 것처럼 꿇으며, 관머리를 얼싸안는다. 그 광경을 보자 식장 안에서는 다시금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