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참만에 동혁은 무거운 짐이나 부린 모군꾼처럼,
“휘유-”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시 마음을 돌이켜보니, 저의 일신이 홀가분한 것도 같았던 것이다.
'채영신만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진댄, 차라리 한평생 독신으로 지내리라.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은 몸을 오로지 농촌 사업에다만 바치리라'하고 일어서면서도, 차마 무덤 앞을 떠나지 못하는데 멀리 눈 아래에서 등불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원재와 다른 청년들이 동혁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혹시 산소에나 있나 하고 떼를 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동혁은 잠자코 청년들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장로의 집에 잠시 들러 곤해서 쓰러진 백현경을 일으키고 몇 마디 앞일을 의논해 보았다. 백씨는 여전히 값비싼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종아리가 하얗게 내비치는 비단 양말을 신은 것이 불쾌해서, 동혁은 될 수 있는 대로 외면을 하고 그의 의견을 들었다.
“여기 일은 우리 연합회 농촌사업부에서 시작한 게니까, 속히 후임자를 한 사람 내보내서, 사업을 계속하기로 작정했어요. 영신이만 할 수야 없겠지만 나이도 지긋하고 퍽 진실한 여자가 한 사람 있으니까요.”
하는 것이 그 대답이다. 동혁은 더 묻지 않았다. 부탁 비슷한 말도 하기 싫어서,
“그럼 나도 안심하겠소이다.”
하고 원재네 집으로 내려왔다. 영결식장에서 여러 사람 앞에 선언한 대로, 당분간이라도 청석골에 머물러 있어 뒷일을 제 손으로 수습해 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였다. 그러나 이미 후임자까지 내정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온다는데, 부득부득 '나를 여기 있게 해주시오'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영신이가 거처하던 원재네 집 텅 빈 건넌방에서 하룻밤을 드새자니, 동혁은 참으로 무량한 감개에 몸을 둘 바가 없었다. 앉았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세상 모르도록 술이나 취해 봤으면…'하고 난생 처음으로 술 생각까지 해보는데, 원재가 저의 이부자리를 안고 건너왔다. 두 사람은 형제와 같이 나란히 누워서 불을 끈 뒤에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였다. 동혁은,
“나는 새로 온다는 여자보다도 원재를 믿고 가네. 나도 틈이 있는 대로 와서 보살펴 주겠지만 조금도 낙심 말고 일을 해주게!”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원재도,
“채 선생님 영혼이 우리들한테 붙어 댕기시는 것 같아서, 일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겠에요.”
하고 끝까지 잘 지도를 해달라는 말에 동혁은 이불 속에서 나 어린 동지의 손을 더듬어 꽉 쥐어 주었다.
닭은 두 홰를 울고 세 홰를 울었다. 그래도 동혁은 이 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사람과 지내오던 일이 너무나 또렷또렷이 눈앞에 나타나서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잠은 안 왔다.
그러다가 어렴폿이 감기는 눈앞에서, 뜻밖에 이러한 글발이 나타났다. 청석학원 낙성식 때에, 식장 맞은편 벽에 영신이가 써 붙였던 슬로우건 같은 글발이, 비문(碑文)처럼 천장에 옴폭옴폭하게 새겨지는 것이었다.
'과거를 돌아다보고 슬퍼하지 말라.
그 시절은 결단코 돌아오지 아니할지니,
오직 현재를 의지하라. 그리하여 억세게, 사내답게 미래를 맞으라!'
이튿날 아침 동혁은 산소로 올라가서, '당신이 못 다한 일과 두 몫을 하겠다'고 맹세한 것을 이제부터 실행하겠다는 말을 다시 한번 자신 있게 한 뒤에, 홱 돌아서서 그 길로 내처 걸어 한곡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시꺼먼 눈썹이 숱하게 난 그의 양미간은, 생목(生木)이 도끼에 찍힌 그 험집처럼 찌푸려졌다. 아마 그 주름살만은 한평생 펴지지 못하리라.
어머니의 병이 염려는 되었으나, 그는 바로 집으로 가기가 싫어서 역로에 몇 군데 모범촌이라고 소문난 마을을 들렀다.
어느 곳에서는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청년이 오막살이 한 채를 빌려 가지고 혼자서 야학을 시작한 곳이 있고, 어떤 마을에서는 제법 크게 차리고 여러 해 동안 한글과 여러 가지 과정을 강습해 내려오다가 당국과 말썽이 생겨 강습소 인가를 취소 당하고 구석구석이 도둑글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한곡리서 오십 리쯤 되는, 장거리에서 멀지 않은 촌에서는 청년이 서너 명이나 보수 한푼 받지 않고 삼 년 동안 주야학을 겸해서 하는 곳이 있는데 그들은 겨우내 두루마기도 못 얻어 입고, 동저고리 바람으로 손끝을 호호 불어가며 교편을 잡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편하게 지냈구나'하는 감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