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을 높여 후렴을 부를 때 영신은 열병환자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그 노래를 지휘할 때처럼, 팔을 내젓는 시늉을 하는 듯하다가,
“억!”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젖히고는 뒤로 덜컥 넘어졌다.
…기름이 졸아붙은 등잔불이 시름없이 꺼지자 뿌유스름한 아침 햇빛은 동창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청석골은 온통 슬픈 구름에 싸였다. 학부형과 청년과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목계의 회원들은 영신의 수시(收屍)를 거두고, 수의를 지어 입혀 입관까지 자기네 손으로 하고, 그 관을 둘러싸고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부모의 상사를 당한 것만큼이나 섧게들 울며 밤낮을 계속하는데, 그 중에도 금분이는 사흘씩이나 절곡을 하고 참새 같은 가슴을 쥐어짜며 울다가, 지금은 선생이 입던 헌 자켓을 끌어안은 채 관머리에 지쳐 늘어졌다.
명복을 비는 기도와 찬미소리는 만수향(萬壽香)의 연기와 같이 끊길 사이가 없고, 수십 리 밖에서까지 일부러 조상을 하러 온 조객들도 적지 않은데, 영신이와 처음 역사를 시작하던 목수는 친누이나 궂긴 것처럼 제 손으로 세워놓은 학원의 기둥을 붙안고, 소리를 죽여 울면서,
“내 손으로 관까지 짤 줄을 누가 알았더란 말요?”
하고 여간 원통해 하지를 않았다.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조상을 나왔는데, 영신의 일동일정을 감시하고 말썽을 부리던 주재소 주임까지 나와서 관머리에서 모자를 벗었다.
빈소 방에는 어느 틈에 책상 하나만 남기고 영신이가 쓰던 물건이라고는 불한당이 쳐간 듯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영신의 손때가 묻은 손풍금은 원재가 가져가고, 바람 차고 눈 뿌리는 밤이면 저를 품어주던 자켓은 금분의 차지인데, 부인들은 요, 이불, 베개, 하다못해 구두, 고무신까지 다투어가며 짝짝이로 치맛자락에 싸 가지고 갔다. 그만 물건이 탐이 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 보듯이, 두고두고 볼 테다.”
하고 서로 빼앗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사를 지낼 날짜 때문에 의논이 분분하였다. 고인의 유언대로 청석학원이 마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윗자리를 잡았는데, (공동묘지의 구역 밖이언만 면소에서 묵인을 해 주었다) 서울서 급보를 접하고 내려온 백현경은 감옥에 있는 사람이 부고를 받더라도 때맞춰 나올 리가 만무라고 하여, 삼일장으로 지내기를 주장하고, 원재 어머니와 회원들은,
“우리 한 이틀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래도 어머니나 박씨가 혹시 올지 누가 알아요? 장사지내기가 뭐 그렇게 급해요?”
하고 오일장으로 지내자고 우겼다. 작고한 사람의 친척이나 애인을 기다린다느니보다도, 영신의 시체나마 하루라도 더 자기 집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물론 당일로 전보를 쳤지만 외딸을 그리다 못해서 먼저 자진했는지 회답조차 없었다.
그러자 사흘되는 날 아침에 뜻밖에도 동혁의 편지가 왔다. 백씨는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황급히 뜯었다.
'지금 놓여 나오는 길입니다. 형무소로 부치신 편지는 두 장 다 오늘에야 받아 보았는데, 이번에는 각기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 오셨다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또다시 학원의 일을 보시든지 하였다가는 정말 큰일납니다.
바로 그리로 가려고 했으나, 동화는 멀리 만주로 뛴 듯한데, 어머니가 애절하시던 끝에 병환이 대단하시대서 집으로 직행합니다. 가 보아서 조금만 감세가 계시면, 백사를 제치고 갈 터이니, 전처럼 먼 길에 마중은 나오지 마십시오. 흉중에 첩첩이 쌓인 말씀은 반가이 얼굴을 대해서 실컷 하십시다.
○월 ○○일 당신의 박동혁'
일부인을 보니 사흘 전의 날짜가 찍혀 있지 않은가.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리로 바로 왔더면 마지막 대면이나 했을 걸.”
하고 백씨는 즉시 특사배달로 한곡리에 전보를 치도록 하였다.
…전보를 받은 동혁은,
“엉? 이게!”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심장의 고동이 덜컥 그치고 온몸을 돌던 피가 머리 위로 와짝 거꾸로 흐르는 듯, 아뜩해서 대문 기둥을 짚었다. 하늘은 샛노란데, 그네를 뛰면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땅바닥이 움폭 꺼졌다 불쑥 솟아올랐다 한다. 억지로 버티고 선 두 다리에 맥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서 그는 문지방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극도에 이르는 놀라움과 흥분을 억지로 눌러서 가라앉히기는 참으로 힘드는 노릇이었다. 돌멩이나 깨무는 것처럼 아래 웃니를 악물고 두 번 세 번 전보지를 내려다보는 동혁의 입에서는,
“꿈이다! 거짓말이다!”
하고 다시 한번 부르짖어졌다.
그날 저녁 동혁은 거의 실신이 된 사람처럼, 청석골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발길을 내어딛기는 하면서도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요, 제정신으로 걷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너무 뚝뚝할이만큼 건전하던 동혁의 심리상태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을 경험하기는 생후 처음이다. 다만 커다란 몸뚱이를 화물처럼 배에다 실리고, 자동차에다 부쳤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