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은 관 모서리에 얼굴을 비비며, 연거푸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영신씨, 영신씨! 내가 왔소. 여기 동혁이가 왔소!”

하고 목이 메어 부르나, 대답은 있을 리 없는데, 눈물에 어리운 탓일까, 관 뚜껑이 소리 없이 열리며 면사포와 같은 하얀 수의를 입은 영신이가 미소를 띄우고 푸시시 일어나 팔을 벌리는 것 같다. 이러한 환각에 사로잡히는 찰나에, 동혁은 당장에 뛰어나가서 도끼라도 들고 들어와 관을 뻐개고, 시체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는 가슴 벅차게 용솟음치는 과격한 감정을 발뒤꿈치로 누룩을 디디듯이 이지의 힘으로 꽉꽉 밟았다. 어찌나 원통하고 모든 일이 뉘우쳐지는지, 땅바닥을 땅땅 치며 몸부림을 하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건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다지 수통스러이 굴 수도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왜 당신은, 일하는 것밖에, 좀더 다른 허영심이 없었더란 말요?”

하고 꾸짖듯 하고는 한참이나 엎드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다가,

'영신 씨 같은 여자도 이런 자리에서 남에게 눈물을 보이나요?'

라고, 경찰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제 입으로 한 말이 문득 생각이 나서 주먹으로 눈두덩을 비비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다시 관머리를 짚고,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침묵하다가 바로 영신의 귀에다 대고 말을 하듯이 머리맡을 조금씩 흔들면서,

“영신 씨 안심하세요. 나는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 있소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당신이 못 다하고 간 일까지 두 몫을 하리다!”

하고 새로운 결심과 영결의 인사를 겸해 한 뒤에, 여러 사람과 함께 관머리를 들고 앞서 나와서, 조심스러이 상여에 옮겼다.

영신의 육신은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떠나려 한다.

동혁의 기념품인 학원의 종을 아침저녁으로 치던 사람의 상여 머리에서 요령 소리가 땡그랑땡그랑 울린다. 상여는 청년들이 메었는데, 수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부인들과 동민이 가득 들어선 속에서, 다시금 울음소리가 일어났다. 아이들은 장강목에 조롱조롱 매달려 제 힘껏 버티어서, 상여도 차마 못 떠나겠다는 듯이 뒷걸음을 친다.

앞채를 꼬나 쥐던 동혁은 엄숙한 얼굴로 여러 사람의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조상 온 사람 전체를 향해서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여러분! 이 채영신양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농촌의 개발과 무산 아동의 교육을 위해서 너무나 과도히 일을 하다가 둘도 없는 생명을 바쳤습니다. 완전히 희생했습니다. 즉, 오늘 이 마당에 모인 여러분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하고 한층 더 언성을 높여,

“지금 여러분에게 바친 채 양의 육체는 흙 보탬을 하려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이 분이 끼쳐 준 위대한 정신은 여러분의 머리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의 조그만 골수에도 그 정신이 박혔을 겝니다.”

하고는, 손길을 마주 모으고 서고, 혹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듣는 여러 청중들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서며,

“그러나 여러분, 조금도 설워하지 마십시오. 이 채 선생은 결단코 죽지 않았습니다. 살과 뼈는 썩을지언정 저 가엾은 아이들과 가난한 동족을 위해서 흘린 피는 벌써 여러분의 혈관 속에 섞였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가슴속에도 그 뜨거운 피가 끓고 있습니다!”


하고 주먹으로 제 가슴 한복판을 친다. 여러 사람의 머리 위로는 감격의 물결이 사리 때의 조수(潮水)와 같이 밀리는 듯… 서울서 온 백현경은 몇 번이나 안경을 벗어서 저고리 고름으로 닦았다.

동혁은 목소리를 낮추어,

“사사로운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마는 나는 이 청석골에서 사랑하던 사람의 사업을 당분간이라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나마 소용이 되신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길을 밟는 것이 나 개인에게도 가장 기쁜 의무일 줄로 생각합니다.”

말이 끝나자, 청년들은 상여를 메고 선 채 박수를 하였다.

장사가 끝난 뒤에, 백현경과 장래의 일을 의논하며 산에서 내려왔던 동혁은, 황혼에 몸을 숨기고 홀로 영신의 무덤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