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는 말머리를 돌렸다. 둘이 서로 집을 찾아갔더라는 것과 그 동안에 적조했던 이야기를 대강대강 하는데 청하지도 않은 술상이 들어왔다. 건배는,

“나 오늘은 술 안 먹겠네.”

하고 막걸리 보시기를 폭삭 엎어놓더니, 각반 친 다리만 문지르며 말 꺼내기를 주저하다가,

“자네 그 동안 한곡리에서 변사(變事)가 생긴 줄은 모르지?”

한다.

“아아니? 무슨 변사?”

동혁의 눈은 둥그래졌다.

“그저께 강기천이가 죽었네!”

“뭐? 누가 죽어?”

동혁은 거짓말을 듣는 것 같았다.

“사실은 강기천이 조상을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건배는, 듣고 본 대로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기천이는 연전부터 주막 갈보에게 올린 매독을 체면상 드러내 놓고 치료를 못하다가 술 때문에 갑자기 더쳐서 짤짤매던 중, 그 병에는 수은(水銀)을 피우면 특효가 있다는 말을 곧이듣고 비밀히 구해다가 서너 돈쭝씩이나 콧구멍에다 피웠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고만 중독이 되어서 온몸이 시퍼래 가지고 저 혼자 팔팔 뛰다가 방구석에 머리를 틀어박고는 이빨만 빠드득빠드득 갈다가 고만 뻐드러졌다는 것이다.

동혁은,

“흥, 저도 고만 살걸.”

하고 젓가락도 들지 않은 술상을 들여다보며, 아무런 감상도 더 입 밖에 내지를 않았다.

건배는 마코를 꺼내 붙이며,

“가보니, 아주 난가(亂家)데 난가야. 한데 형이 죽은 줄도 모르는 건살포는 서울서 웬 단발한 계집을 데리고 왔네 그려. 마침 쫓겨났던 본처가 시아주범 통부를 받고 왔다가, 외동서끼리 마주쳐서 송장은 뻗쳐 놓고 대판으로 쌈이 벌어졌는데, 참 정말 구경할 만하데.”

하고 여전히 손짓을 해 가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동혁은 고개만 끄덕이며 듣다가,

“망할 건 진작 망해야지.”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만에,

“그런데 자넨…”

하고 전보다도 두 볼이 더 여윈 건배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자네 그 노릇을 오래 할 텐가?”

하고 묻는다. 건배는 그런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만 집어치겠네. 이 연도 말까지만 다니고 먹거나 굶거나 한곡리로 다시 가겠네. 되려 빚만 더끔더끔 지게 돼서 고만 둔다는 것보다도 아니꼽고 눈꼴 틀리는 거 많아서 이젠 넌덜머리가 났네.”

하고 담배 연기를 한숨 섞어 내뿜으며,

“월급푼에 목을 매다느니보다는 정든 내 고장에서 동네 사람이나 아이들의 종노릇을 하는 게 얼마나 맘 편하고 사는 보람이 있다는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네.”

하고 진정을 토한다. 그 말에 동혁은 벌떡 일어서며,

“자아 그럼, 우리 일터에서 다시 만나세! 나는 지금 자네가 한 말을 다시 한번 믿겠네.”

하고 맨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굳게굳게 건배의 손을 쥐었다.

“염려 말게. 자넬랑은 벌판의 모래보다 한줌의 소금이 되어 주게!”

건배도 잡힌 손을 되잡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