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러한 지도분자들과 굳게 악수를 하고, 하룻밤씩 같이 자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방침을 토론도 하였다. 어느 곳에 가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계몽적인 문화 운동도 해야 하지만 무슨 일에든지 토대가 되는 경제 운동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는 동시에 그는, '이제부터 한곡리에만 들어앉았을 게 아니라 다시 일에 기초가 잡히기만 하면, 전조선의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널리 듣고 보기도 하고, 또는 내 주의와 주장을 세워 보리라. 그네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서 같은 정신과 계획 아래서 농촌 운동을 통일시키도록 힘써 보리라' 하니, 어느 구석에선지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들이 그러한 고생을 달게 받으며, 굽히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실지로 보니 동혁은 한곡리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생각이 바로 어제런 듯이 났다. 동시에 옛날의 동지가 불현듯이 보고 싶었다. 일체의 과거를 파묻어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려는 생각이 굳을수록 동지들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건배를 찾아가 보자'

지난날의 경우는 어찌 되었든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건배였다. 보고만 싶은 게 아니라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박봉 생활을 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적지 않은 돈을 부쳐 준 치사도 할 겸, 그가 일을 보는 군청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건배는 군청에도 거기서 멀지 않은 삭월세로 들어 있는 그의 집에도 없었다.

건배의 아내와 아이들은 반겼으나,

“엊저녁에 한곡리까지 다녀올 일이 있다고 자전거를 타고 가서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무슨 일일까! 나를 찾아가지나 않았나?'하고 동혁은 일어서는데 안주인이 한사코 붙들어서 더운 점심을 대접받으며 지내는 형편을 들었다.

“노루 꼬리만한 월급에 그나마 반은 술값으로 나가서 어렵긴 매일반이에요. 일구월심에 다시 한곡리에 가서 살 생각만 나요. 굶어도 제 고장에서 굶는 게 맘이나 편하죠.”

건배의 아내는 당장에 따라 일어서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동혁은 그와 의형제까지 한 사이를 알면서도 영신의 죽음은 짐짓 말하지 않았다. 그가 영신의 소식을 묻고 혼인 때는 꼭 청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네에 청하고 말고요.”

하고 쓰디쓴 웃음을 웃어 보였다.

한곡리가 십리쯤 남은 주막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 양복장이와 마주치자, 동혁은,

“여어, 건배 군 아닌가?”

하고 손을 들었다.

“요오, 동혁이!”

키장다리 건배는 자전거를 내던지고 달려들어, 동혁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피차에 눈을 꽉 감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이게 얼마 만인가?”

“어디로 해 오는 길인가?”

하고 동시에 묻고는, 함께 대답이 없다.

“아무튼 저 집으로 좀 들어가세.”

건배는 동혁을 끌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아, 신문에까지 났데만, 영신씨가 온 그런…”

건배는 대뜸 동혁의 가슴속의 가장 아픈 구석을 찌르고도 말끝을 맺지 못한다. 동혁은 손을 들어,

“우리 그 사람의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세. 제발 그래주게!”

하고 손을 들어 친구의 입을 막았다. 건배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한숨 섞어,

“그렇지, 남자한테는 사랑이 그 생활의 전부가 아니니까… 하지만 어디 그이하고야 단순한 연애관계뿐이었나? 참 정말 아까운…”

하는데,

“글쎄 이 사람 그만둬!”

하고 동혁은 성을 버럭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