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와 다른 교인들이 들어와 병원으로 가기를 번 차례로 권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싫어요 싫어. 난 청석골서 죽고 싶어요!”
하고 맥이 풀린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병세는 시시각각으로 더해 가는 편이언만 영신은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못하게 하였다. 고통이 조금 덜해서 정신만 들면, 유리틀에 끼어서 책상머리에 모셔놓은 어머니의 사진을 내려달래서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지으면서도 곁의 사람이,
“오시든 못 오시든 사람의 도리가 그렇지 않으니 전보나 한 장 칩시다.”
하고, 저다지도 그리운 어머니를 마지막 뵙지 못하면 눈이 감기겠느냐는 뜻을 비치건만, 영신은,
“우리 어머니한테, 마지막 가는 효도는…”
하고 한숨을 섞어,
“내 이 꼴을 뵈어드리지 않는 거야요!”
하고 제발 기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두 번 세 번 간청을 하였다. 영신의 고집을 아는 원재 어머니는,
“그럼 서울로나 편지를 합시다요.”
하여도,
“내 병을 고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고 머리를 흔들다가,
“하나님이 나를 설마…”
하고 다시 살아날 자신이 있는 듯이, 가냘픈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다가도 반듯이 누워 가슴 위에 합장을 하고,허옇게 바랜 입술을 떨면서,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연거푸 부른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며 최후로 부르짖은 말이었다.
등잔불에 어룽지는 천장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원한과 절망과 참을 수 없는 슬픈 빛이 어리었다.
닥쳐오는 죽음을 짐작하면서도, 인력으로 어길 수 없는 가장 엄숙한 사실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사실을 억지로 부인하려는 마음! 끝까지 신앙심을 잃지 않고, 그 대상자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이적(異蹟)이라도 나타내어 주기를 안타까이 기다리는 그 심정…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열 겹 스무 겹 선생의 방을 둘러싸고 땅바닥에 가 쪼그리고 앉아서 흐느껴 운다. 그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 영신은 배개에서 조금 머리를 들며,
“저게 무슨 소리요?”
하고 묻는다.
“…아마 바람 소린가 봐요.”
원재 어머니의 목소리는 문풍지와 함께 떨렸다. 영신이가 평시에 가장 귀여워하고 불쌍히 여기던 금분이는 이틀째나 밥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선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으며 시중을 든다. 가뜩이나 헐벗고 얻어먹지 못해서 파리한 몸이 기신없이 쓰러졌다가도 바스락 소리만 나면, 발딱 일어나,
“선생님 왜 그러시유?”
하고 영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앓는 사람과 간호하는 사람들이 나가 있으라고만 하면,
“난 싫어, 난 싫어. 왜 날더러만 나가래.”
하고 발버둥을 치며 통곡을 내놓아서, 하는 수없이 내버려두었다.
한편으로 교인들은 예배당에 모여서 밤늦도록 기도를 올린다.
“저희들을 창조하시고 길러 주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이 모처럼 이 땅에 내려보내신 귀한 따님을 왜 어느새 부르려 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당신의 뜻이오니까? 그 누이는 이곳에 와서, 무식한 저희들을 위해 뼈가 깎이도록 일을 했습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는 그 시각까지 불쌍한 조선의 자녀들을 위해서 걱정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지은 학원 하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고생을 참아왔습니다. 주여! 그는 청춘입니다. 열매도 맺어보지 못한 순결한 처녀입니다. 인생의 기쁨도 즐거움도 맛보지 못하고, 다만 당신 한 분을 의지하고 동족을 사랑함으로써 그 귀중한 몸을 바쳤습니다.
주여! 오오, 사랑이 충만하신 주여! 그에게 생명수를 뿌려 주소서! 저희들의 천사인 채 영신 누이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리 청석골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멘을 부르는 남녀 교인의 목소리는 일제히 울음으로 변하였다.